[민사] "부모 장례식 방명록, 다른 형제들에 열람 · 등사 허용해야"
[민사] "부모 장례식 방명록, 다른 형제들에 열람 · 등사 허용해야"
  • 기사출고 2022.04.0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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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관습상 · 조리상 의무 있어"

장남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부모 장례식에 조문 온 조문객들의 방명록과 화환발송명부 전체를 동생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가 법원 판결을 통해 제공하게 되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에 패소 판결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성지호 부장판사)는 4월 1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동생 2명이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작성된 방명록과 화환발송명부에 대하여 열람과 등사를 하게 하라"며 정 부회장을 상대로 낸 소송(2021가합32517)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방명록과 화환발송명부에 대하여 열람과 등사를 하게 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가 원고들을 대리했다.

정 부회장의 어머니 조 모씨는 2019년 2월, 아버지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은 2020년 11월 사망했고, 각각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절차가 진행됐다. 당시 정 부회장의 동생들은 장례절차를 마친 뒤 정 부회장에게 장례식 방명록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으나, 정 부회장은 방명록 전체를 공개하지 않고 동생들 측 조문객이라고 판단한 조문객 명단 일부만 건넸다. 이에 동생들이 2020년 12월과 2021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각 방명록 사본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되자 방명록과 화환발송명부의 열람 · 등사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장례식은 망인을 기리기 위한 예식으로, 일반적으로 망인의 자녀들이 상주 · 상제가 되어 함께 장례 절차 및 일정을 준비하고 문상객을 접대하는 한편 문상객들도 망인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방문하는데, 이 때 문상객에는 망인의 지인뿐만 아니라, 상주 · 상제들의 지인들도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장례예절에는 장례식 종료 후 유족들의 답례 인사까지도 포함되는데, 상주 · 상제들이 장례를 치룬 이후에 문상객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를 마련하거나 감사 인사를 보내는 것이 예의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또 "상주 · 상제들이 문상객에게 답례 인사를 하기 위하여, 장례식장에 방명록을 비치하거나, 조의금을 담은 봉투에 기재된 문상객들의 성명을 확인하거나, 화환을 발송해 준 사람들의 명부를 따로 기록하여 이를 확인하는 방법 등이 일반적으로 이용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장례식 관습과 예절, 방명록 · 화환발송명단의 성격 및 중요성을 고려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방명록 · 화환발송명부는 망인의 자녀들이 모두 열람 · 등사 가능한 상태에 있어야 하고, 방명록 · 화환발송명부를 보관 · 관리하는 자는 망인의 다른 자녀들이 이를 열람 · 등사할 수 있도록 할 관습상, 조리상의 의무가 있다"며 "피고는 부모의 장례절차가 종료된 이후 각 방명록 및 화환발송명부를 보관하여 오다가 원고들에게 임의로 선별한 일부 명단만을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는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방명록 및 화환발송명부에 대하여 열람 및 등사를 하게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피고 측은 '상주는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개인정보처리자"이고, 문상객들은 "개인정보주체"에 해당하는데, 문상객들은 자신과 관계있는 특정 상주에게 자신의 개인정보에 관한 수집 · 이용을 허락한다는 의사로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므로, 원고들이 방명록에 기재된 모든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을 청구하는 것은 원고들의 개인정보처리권한을 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각 문상객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상주나 상제를 「개인정보 보호법」상의 개념인 "개인정보처리자"라고 할 수 없으며, 앞서 살펴본 장례식의 전례적, 사회 · 문화적 의미, 방명록 · 화환발송명부 등의 성격과 함께 일반적으로 장례식장에는 각 상주 · 상제별로 별도의 방명록이 비치되지 않는 점, 문상객들도 각 상주 · 상제별로 방명록이 구분되어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 점, 문상객 중에는 상주 · 상제와 상관없이 망인 본인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해 문상을 하는 경우도 많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원고들이 방명록 및 화환발송명부를 열람 · 등사한다고 하여 각 문상객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