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미국 하와이주 법원의 '3배 손해배상' 판결 국내 집행 가능"
[민사] "미국 하와이주 법원의 '3배 손해배상' 판결 국내 집행 가능"
  • 기사출고 2022.04.0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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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한국 손해배상제도 기본질서에 위배 안 돼"

불공정 경쟁행위 가해자에게 실제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한 미국 하와이주 법원의 판결을 국내에서 그대로 집행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우리나라 손해배상 관련 법률의 기본질서에 현저히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미국기업인 A사는 필리핀 회사인 D사가 생산하는 건조 망고를 하와이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수입 · 판매하는 계약을 2003년경 D사와 체결하고 해당 제품을 수입 · 판매해 왔다. 같은 미국기업인 B사는 A사로부터 D사의 제품을 공급받아 하와이, 일본, 태평양 등의 지역에서 판매해 왔다.

그런데 A사는 2009년 1월경 D사로부터 A사가 더 이상 독점판매 대리인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A, B사는 C사가 불법적으로 A, B사와 D사 사이의 독점계약 관계를 방해하고 불공정한 경쟁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이유로 미국 하와이주 제1순회법원에 소송을 냈고, 하와이주 법원은 C사가 원고들과 D사 사이에서 독점적으로 식료품을 수입 · 판매하는 계약관계를 방해하고 불공정한 경쟁방법을 사용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A사의 손해액을 20만 달러, B사의 손해액을 38만 1,000달러로 인정, C사에 손해액의 3배인 60만 달러와 114만 3,000달러를 각각 A사와 B사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미국 하와이주 개정법(Hawaii Revised Statutes) 제480-13조 (b)항 (1)호는 불공정한 경쟁방법을 사용한 행위 등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미화 1,000달러 또는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3배의 금액 중 큰 금액을 배상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A사와 B사는 이 판결을 근거로 C사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강제집행을 해달라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하와이주 법원이 명령한 손해액의 3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액 전부에 대한 강제집행을 허가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강제집행 범위를 손해액만큼인 20만 달러와 38만 1,000달러로 한정했다. 한국의 민사법 체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닌 손해의 전보만을 인정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그러나 3월 11일 원심을 깨고, '3배 배상'을 집행하는 것이 옳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8다231550). 법무법인 바른이 원고들을 대리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손해배상제도의 근본이념은 피해자 등이 실제 입은 손해를 전보함으로써 손해가 발생하기 전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대법원 2003. 9. 5. 선고 2001다58528 판결 등 참조). 그러다가 2011년 처음으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원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로 발생한 손해의 배상과 관련하여 실제 손해의 3배를 한도로 하여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도입했다(35조). 이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도 사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 등에 대하여 실제 손해의 3배를 한도로 하여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 규정을 도입하였고, 계속해서 개인정보, 근로관계, 지적재산권, 소비자보호 등의 분야에서 개별 법률의 개정을 통해 일정한 행위 유형에 대하여 3배 내지 5배를 한도로 하여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대법원은 "이처럼 개별 법률에서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것은 그러한 배상을 통해 불법행위의 발생을 억제하고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실질적으로 배상하려는 것"이라며 "이와 같이 우리나라 손해배상제도가 손해전보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개별 법률을 통해 특정 영역에서 그에 해당하는 특수한 사정에 맞게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명하는 외국재판이 손해배상의 원인으로 삼은 행위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개별 법률의 규율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그 외국재판을 승인하는 것이 손해배상 관련 법률의 기본질서에 현저히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이때 외국재판에 적용된 외국 법률이 실제 손해액의 일정 배수를 자동적으로 최종 손해배상액으로 정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그 외국재판의 승인을 거부할 수는 없고, 우리나라의 관련 법률에서 정한 손해배상액의 상한 등을 고려하여 외국재판의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요컨대,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명한 외국재판의 전부 또는 일부를 승인할 것인지는, 우리나라 손해배상제도의 근본원칙이나 이념, 체계를 전제로 하여 해당 외국재판과 그와 관련된 우리나라 법률과의 관계, 그 외국재판이 손해배상의 원인으로 삼은 행위가 우리나라에서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개별 법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만일 속한다면 그 외국재판에서 인정된 손해배상이 그 법률에서 규정하는 내용, 특히 손해배상액의 상한 등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하와이주 판결은 피고가 원고들과 D 사이에서 독점적으로 식료품을 수입 · 판매하는 계약관계를 방해하기 위해 불공정한 경쟁방법 등을 사용한 행위를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서는 이러한 피고의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율하고 있고(공정거래법 제45조 참조), 비록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사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 등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3배 범위 내에서 손해배상을 허용함으로써 공정거래법이 규율하는 영역에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결국 하와이주 판결이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삼은 피고의 행위는 실제 손해액의 3배 내에서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법조항을 두고 있는 공정거래법의 규율 영역에 속하므로, 실제 손해액의 3배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을 명한 하와이주 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우리나라 손해배상제도의 원칙이나 이념, 체계 등에 비추어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정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하와이주 판결 중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배상액 및 이에 대한 지연이자의 지급을 명하는 부분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여 강제집행을 불허한 원심 판단에는 하와이법에 따라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배상액의 지급을 명하는 하와이주 판결의 승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외국법원의 확정재판 등에 대한 집행판결을 허가하기 위한 승인요건을 판단할 때에는 국내적인 사정뿐만 아니라 국제적 거래질서의 안정이나 예측가능성의 측면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고, 우리나라 법제에 외국재판에서 적용된 법령과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는 법령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그 외국재판의 승인을 거부할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