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퇴직금 요구하자 9년 전 교통사고 들춰낸 운수회사…신의칙상 허용 안 돼
[손배] 퇴직금 요구하자 9년 전 교통사고 들춰낸 운수회사…신의칙상 허용 안 돼
  • 기사출고 2022.03.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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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법] 퇴직 근로자 상대 손배소 기각

12년 넘게 운송업체인 A사에서 통근버스 기사로 근무하던 B(75)씨는 2021년 2월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았다. B씨는 유한회사인 A사 대표와 금전 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이로 인해 자신이 해고되었다고 생각했다. B씨는 7년 전인 2014년 회사 대표에게 2,500만원을 연 12%의 이자로 빌려줬으나, 대표는 이자와 원금을 갚지 않았다. 이에 B씨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하자, A사 대표는 취하를 요구했고 B씨는 거절했다.

B씨는 대여금 분쟁과는 별도로 퇴직금을 요구했다. B씨의 월급은 그동안 월 100여만원의 박봉으로, 12년 9개월간 근무했음에도 퇴직금은 894만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해고예고수당 100여만원을 합하면 모두 1,000여만원이었다. 해고예고수당은 사업주가 해고예고를 30일 이전에 하지 않을 경우 지급해야 하는 수당(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이다. 그러나 회사 대표는 퇴직금 지급마저 거절했다. 대신 B씨가 9년 전 교통법규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냈고, 이에 차량을 폐차하게 됐다며 차량 가액에 해당하는 1,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회사 이름으로 제기했다.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물어줘야 할 위기에 처한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의 강민호 변호사는 사고 이후 9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배상청구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차량의 경우 관련법이 규정하는 차령(車嶺) 제한 규정 11년을 훌쩍 넘어, 사고가 아니더라도 운송업무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임을 밝혀냈다. 이어 "B씨의 과실이 있기는 하지만,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흔히 발생하는 사고"라며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교통사고로 인한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전주지법 최형철 판사는 최근 "이 사건 교통사고의 경위와 피고의 과실 정도, 위 사고에 대한 처리 상황, 피고의 원고 회사에서의 근무기간, 내용 및 조건, 원고의 소 제기 경위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위 사고 이후 적어도 묵시적으로라도 피고에게 위 사고로 인한 책임을 면제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청구는 신의칙상 허용되지 아니하다(대법원 1994. 12. 13. 선고 94다17246 판결 등 참고)"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