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캄보디아인 만삭 아내 살해 혐의' 무죄 남편 보험금 청구 기각
[보험] '캄보디아인 만삭 아내 살해 혐의' 무죄 남편 보험금 청구 기각
  • 기사출고 2022.01.0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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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피보험자인 아내가 동의했다고 볼 수 없어"

보험금을 타내려고 교통사고를 가장해 캄보디아인 만삭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가 확정된 남편이 보험사를 상대로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으나 졌다. 법원은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아내가 보험계약의 내용을 이해한 후 진정한 의사로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에서의 '동의'를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부(재판장 황순현 부장판사)는 11월 17일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가 확정된 남편 A씨가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상대로 4억 6,000여만원의 보험금 지급을 요구한 소송(2016가합550030)에서 이같이 판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무법인 남산과 법무법인 광장이 미래에셋생명보험을 대리했다. A씨는 법무법인 화우가 대리했다. 

A씨는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 41분쯤 천안시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하향 방면 335.9㎞ 부근에서 임신 7개월의 캄보디아인 아내 B씨를 조수석에 태우고 스타렉스 승합차를 5차로 중 갓길로 운행하던 중 도로 옆 비상정차대에 정차되어 있던 8톤 화물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가 나 아내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A씨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아내는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 검찰은 A씨가 아내를 피보험자로 보험금 합계 약 95억원에 달하는 33개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점 등을 근거로 A씨를 살인 등 혐의로 기소했다. A씨가 사고 발생 무렵 납입했던 월 보험료는 420여만원에 달했다. A씨는 1심에서 무죄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반면 대법원은 "A씨가 고의로 아내를 살해하였음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고, 이후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을 거쳐 A씨는 살인과 보험금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다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가 인정되어 금고 2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형사재판이 진행되던 2016년 7월 미래에셋생명보험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A씨는 미래에셋생명보험에 피보험자를 아내로,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자신으로 하여 2009년 11월 9일 재해사망보험금 2억원의 보험계약을, 2011년 9월 16일 65세 계약 해당일 이전 사망시 보험가입금액 5억 2,000여만원의 50%를 일시금으로, 1%인 약 520만원을 매월 정기금으로 지급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결(2009다74007 등)을 인용,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을 제한 없이 허용할 경우, 보험계약자 또는 보험수익자 등의 이해관계인들이 보험금 취득을 목적으로 피보험자의 생명을 고의로 해할 우려(피보험자 살해의 위험성), 피보험자의 생사와 관련 없는 도박적인 동기에서 보험계약을 체결할 가능성(도박보험의 위험성), 타인의 생명을 거래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선량한 풍속을 해할 위험성이 있고, 이러한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상법 제731조 제1항은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그 타인의 동의를 받도록 하면서, 동의의 중요성에 비추어 그 동의 여부를 둘러싼 분쟁의 소지를 방지하고자 동의의 시기와 방식을 '보험계약 체결시까지 서면'에 의하도록 명확히 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는 강행법규에 해당하므로 이를 위반한 보험계약은 확정적으로 무효가 되고, 피보험자가 이미 무효가 된 보험계약을 추인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보험계약은 유효로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위와 같은 상법 제731조 제1항의 입법 취지와 내용에 비추어 보면, 위 규정에 따른 피보험자인 '타인의 동의'는 자신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의 체결에 대하여 이의가 없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각 보험계약의 내용을 이해한 후 진정한 의사로 이루어진 동의를 의미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가 각 보험계약 청약서의 피보험자란에 자신의 당시 이름을 자필로 기재한 사실은 인정되나, B가 각 보험계약의 체결의 내용을 이해한 후 진정한 의사로 동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는 2008. 1. 21.경 원고와 혼인한 캄보디아인으로 2008. 2. 29.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한국 언어나 문화, 생활환경, 보험제도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B는 제1 보험계약이 체결된 2009. 11. 9.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한국어에 미숙했던 것으로 보이고, 제2 보험계약 체결된 2011. 9. 16.에 이르기까지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원고가 제출한 B인의 한국어 연습 노트를 보더라도 각 보험계약 체결 당시 B는 아주 기본적이고 간단한 초등 학교 저학년 수준의 한국어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재판부는 "B가 2008. 2. 29. 입국한 후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여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고, 2012. 3. 19.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취득하고 2013. 11. 6.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은 인정되나, ㉮B가 원고와 혼인 당시 만 18세, 제1 보험계약 체결 당시 만 19세, 제2 보험계약을 체결 당시 만 21세로 사회경험이 많지 않았고, 생활범위(지역적, 경제적 등 여러 측면)도 제한적이었던 점, ㉯보험계약의 '피보험자'나 '수익자' 등 보험계약서에 기재된 단어는 한자로 구성된 법률용어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으므로 단순히 한국어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정도로 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 ㉰실제로 B의 지인은 'B는 왜 그렇게 많은 보험 서류에 싸인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라고 진술하기도 하였던 점, ㉱보험설계사들의 진술에 비추어 각 보험계약이 B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여 체결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보험설계사들이 B에게 설명하였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보험설계사들은 원고에게는 설명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B의 사망보험금 수익자인 원고가 이를 B에게 제대로 알려주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는 점, ㉳제2 보험계약 체결전까지 원고는 B를 피보험자로 하여 15건 이상의 보험에 가입하여 사망시 지급될 보험금이 합계 20억원에 이르렀고, 제2 보험계약도 B의 사망시 보험가입금액(520,833,333원)의 50%를 일시금으로, 1%(약 520만원)를 매월 정기금으로 지급하는 보험인데, 만일 B가 위와 같이 원고가 자신의 사망으로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계약을 중복하여 체결하고 그 때문에 매월 상당한 금액의 보험료를 납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의문을 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B로서는 자신의 동의가 없으면 위와 같은 보험계약이 체결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각 보험계약 체결 이후의 사정일 뿐 아니라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경우 문제은행 방식이어서 단순 암기로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B는 각 보험계약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각 보험계약의 체결에 있어, 피보험자인 B의 동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