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IP Law] 미국 무효심판(IPR), 이것만은 알고 하자
[리걸타임즈 IP Law] 미국 무효심판(IPR), 이것만은 알고 하자
  • 기사출고 2021.12.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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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지면 바꾸기 어려워…제대로 한 번에 해야"

한국 특허소송 경험이 있는 회사는 미국에서 특허 침해로 피소되면 한국무효심판과 유사한 Inter Partes Review(IPR)를 방어책으로 고려한다. IPR은 직역하면 '당사자계 검토'인데 국내에서는 통상 '미국 무효심판'으로 이해되는 제도다.

IPR은 미국특허청 내 특허심판원(PTAB; Patent Trial & Appeal Board)이 전담하는데 무효율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절차적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무효심판하듯이 접근하면 실책으로 이어지니, 다음과 같은 특성에 유의하자. 우선 IPR의 기본적 특징을 설명한 후 전략적으로 꼭 알아두어야 할 점을 짚어 보았다.

◇이민호 변리사
◇이민호 변리사

특허권자 아니면 누구나 가능

-특허권자를 제외한 누구나 등록 특허에 대해 IPR을 제기할 수 있다.

-특허침해소송이 제기되면 소장 송달일로부터 1년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 PTAB의 3인 행정특허판사(Administrative Patent Judge)가 진행하는데, 이들은 특허 사건 경험이 많은 변호사 출신이 대다수다.

-무효사유는 선행 문헌에 기초한 신규성 및 진보성 결여로 한정된다. 기재불비나 특허부적격 등은 근거가 되지 않는다.

-절차 진행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신청인과 특허권자가 번갈아 서면을 낸 뒤 마지막으로 구술 심리일에 쌍방의 주장을 듣고 PTAB이 서면으로 결정한다.

-IPR 신청서를 제출하면 그로부터 6개월 내에 절차를 개시(institution)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i)개시 결정이 나면 그로부터 1년 내에 최종판결이 내려지고 (ii)불개시 결정(不開始決定; decision not to institute)이 나면 다시 검토해줄 것을 PTAB에 요청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해 별도로 불복해 항소할 수는 없다.

개시 여부 결정이 관건

-개시 여부 결정의 판단기준은 하나 이상의 청구항이 무효로 될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다. 따라서 PTAB의 개시 결정문에는 무효가 될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기재된다. 즉, 개시결정문을 통해 PTAB의 심증이 어느 정도 내비쳐지는 셈이다. 그러니 개시 결정 후의 절차는 '개시 결정에 대한 옹호와 보충(IPR 신청인) 대 반박(특허권자)'의 구도로 흘러간다.

-청구항의 보정 신청은 허용되나 인정된 사례는 드물다.

위와 같은 기본 얼개를 바탕으로 IPR 전략을 생각해 보자.

우선 IPR이 개시(institution)되면 특허가 무효로 될 확률이 높다. 2019년도 미국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개시된 사건들 중 중간에 화해 등으로 종결된 사건을 제외하면 PTAB의 최종 판결시 81%는 적어도 일부 청구항은 무효로 판단되었다. 무효 주장한 청구항 전체가 무효로 판단된 경우도 63%에 달한다.

10건 중 4~6건 무효

문제는, 불개시 결정 비율도 10건 중 3, 4건으로 무시 못 할 수준인데다가 불개시 결정 비율이 올라가는 추세라는 점이다(2018년 40%, 2019년 37%, 2020년 44%).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IPR 사건 10건 중 4~6건이 무효로 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물론 불개시 결정에는 기속력이 없으니 동일한 무효 자료에 기초해 침해사건에서 다시 다퉈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그렇다는 말. IPR 절차 문지방도 건너지 못한 주장으로 침해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처럼 불개시 결정이 나와버리면 무효 가능성이 낮아지니 분쟁의 형세가 확 기울어진다. 반대로 개시 결정이 나오면 무효 가능성이 60~80%로 올라간다.

그리고 개시 결정이 있으면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방법원이 침해소송을 중지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개시 결정이 나오느냐 여부가 소송 전략상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눈 밝은 분들은 불개시결정이 나오더라도 이를 보완해 IPR을 다시 신청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한다. 새로운 선행문헌을 찾아서 재도전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데 PTAB에게는 '재량' 결정 권한이란 게 있다. 비록 무효 가능성이 있더라도 재량으로 불개시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재량' 불개시 결정의 대표적인 예가 동일한 신청인이 동일한 특허에 대하여 이미 IPR을 제기한 적이 있는 경우, 즉 IPR 재도전이다.

IPR 재신청 어려워

이에 대해 눈이 더 밝은 분들은, IPR을 아무나 신청할 수 있다고 하니, 다른 신청인을 내세우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러나 PTAB은 다 계획이 있다. 두 신청인이 서로 다르더라도 두 신청인 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불개시 결정할 수 있다(Valve Corp. v. Elec. Scripting Prods., Inc., Case IPR2019-00062, -00063, -00084(PTAB Apr. 2, 2019) (Paper 11) 참조).

남을 시켜 새로운 IPR을 제출한다고 해서 불개시 결정을 회피하기는 쉽지 않다. IPR 신청서에 이 IPR에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real party in interest)을 모두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전 신청인을 숨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선행문헌을 찾아서 IPR에 재도전하는 것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새로운 문헌을 낸다고 자동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문헌이 이전 IPR 제기시 '찾을 수 있었을 만한' 문헌이면 불개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찾을 수 있었을 만한 문헌의 범위는 꽤 넓어서 인터넷이나 특허DB에서 키워드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문헌은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게 속편하다. 이를 피하려면 내가 전에 못찾았던 이유를 그럴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를테면 어느 궁벽한 시골의 도서관에만 있는 고서라든가…

이런 규칙은 한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절차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 한 예로, 한국무효심판 심결에 대해 특허법원에 불복의 소를 제기할 때 새로운 선행문헌을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IPR 결정에 대한 항소시 연방항소법원(Federal Circuit)에서는 법률적 쟁점만 다툴 수 있지, 새로운 선행문헌으로 무효를 다툴 수 없다.

나아가 IPR의 최종 판단에는 금반언(estoppel) 효력이 생겨 침해소송에서 이미 IPR에서 사용한 선행문헌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행문헌에 기초한 신규성 또는 진보성 결여 무효 주장이 금지될 수 있다.

여기서 IPR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하려면 제대로 한 번에'가 드러난다. 일단 IPR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선행문헌 조사를 철저하게 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선행문헌들을 골라내서 무효 주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장담컨대, 불개시 결정 한 번 맞으면 분쟁 내내 후회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리고 IPR을 제대로 하려면, 좋은 미국 대리인은 기본이고, 그에 더해 좋은 기술 전문가를 모셔야 한다. 특허와 선행문헌 모두 문서인데, 대리인과 회사 내 엔지니어가 머리를 맞대고 무효 주장을 다듬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특허와 선행문헌의 해석은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라는 가상 인물의 프리즘을 통해 이루어지고 또 특허 발명이 이 선행문헌에서 쉽게 도출할 수 있었는지 여부 역시 이 가상의 인물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IPR에서는 기술 전문가가 이 '가상의 인물' 역할을 한다(그렇다고 진짜 통상의 기술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전문가로 하여금 통상의 기술자라면 이렇게 이해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IPR 신청인과 특허권자는 모두 각자의 전문가 증인을 섭외해서 전문가 진술서를 제출한다. 또 이들은 사실조사(discovery)의 대상이 되어 재판 전 법정 외 증언(deposition)을 한다. 이들의 서면 의견과 증언은 특허 등의 여타 서증과 더불어 당사자 간 공방의 유니버스가 되는데, 문서야 이미 고정된 상태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증거 측면에서 좀 더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 입장을 대변할 전문가의 발굴과 준비이다. 따라서 미국 대리인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보다는 좋은 전문가를 섭외하기 위해 같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40~60만불 지출 보통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설명에서 눈치챘겠지만, IPR은 돈이 제법 든다. 21항의 청구항에 대해 IPR 신청시 관납료 19,375불을, 개시 결정이 나오면 추가로 23,250불을 내야 하니, 관납료만 약 5천만원이 든다. 미국 대리인과 전문가 비용은 별도이니, 사건의 복잡도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다 따져보면 40~60만불 지출하는 게 별로 이상하지 않다. 이처럼 비용도 많이 드니, '하려면 제대로 한 번에' 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 비용도 부담이 되는 작은 규모의 미국 침해소송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침해소송을 제기한 상대방과 신속하게 협상을 시도해보자. 특히 협상금을 목적으로 동일한 특허로 여러 회사에 중복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NPE(Non-Practicing Entity)에 의한 소송이라면 이 전략을 더욱 고려하자. 당신이 이겨도 나에게서 가져갈 게 별로 없고 내가 이미 좋은 선행문헌을 찾아서 IPR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상대방 역시 승소가능성, 소송비용 및 특허무효시 상실 이익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화해할 가능성이 꽤 있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ITC는 IPR 개시 불구 절차 진행

IPR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설명하면, 지방법원 침해소송은 IPR 개시 결정으로 중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ITC 사건은 그렇지 않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에 특허 침해를 이유로 미국 내 수입 금지를 요청하는 조사를 신청할 수 있는데, ITC는 IPR이 개시되었다고 절차를 중지하지 않고 그냥 진행한다. ITC가 이러니 이제는 PTAB도 ITC 결정 전에 IPR 최종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개시 결정을 하기 시작했다. 해봐야 분쟁해결을 도모하지 못하니 리소스를 아끼겠다는 취지다. 그러니 ITC 사건에서는 IPR이 좋은 방어책이 되기 어렵다.

이민호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mhlee1@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