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건설공사 현장 작업 중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 입고 26년 지나 극단적 선택, 산재"
[노동] "건설공사 현장 작업 중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 입고 26년 지나 극단적 선택, 산재"
  • 기사출고 2021.11.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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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하반신 마비 · 욕창으로 우울증 유발 · 악화"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0월 14일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입고 약 26년이 지나 극단적 선택을 한 근로자 A(사망 당시 60세)씨의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1두34275)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는 1992년 8월 26일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사고로 하반신 완전마비 등으로 산재요양을 승인받고 장해등급 제1급 결정을 받았다. 이후 하반신 마비로 인한 욕창으로 10여 차례 입원 치료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욕창'으로 1차 재요양승인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매달 한 번씩 병원에 방문하여 진료를 받았다. A씨는 또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 · 신체형장애'로 2차 재요양승인을 받고 2013년 12월부터 2014년 4월까지는 병원에서 욕창치료 도중 우울증세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2018년 6월까지 병원에서 신체형 장애,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로 지속적인 통원치료를 받았다.

A씨는 하반신 마비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체위 변경이 어려워 욕창이 생기어, A씨의 배우자가 A씨의 관절 운동을 돕거나 체위를 변경하는 등 A씨를 간병했으나, A씨의 배우자가 2018년 7월 3일부터 8월 11일까지 약 40일간 늑골 골절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느라 A씨를 돌보지 못했다. A씨는 배우자가 퇴원하고 8일이 지난 후인 8월 19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A씨의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 그 자체 또는 업무상의 재해로 말미암아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져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근로자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와 같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질병이나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 심리적 상황, 근로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 재해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는 추락사고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휠체어 생활을 하였고, 하반신 마비로 발생한 욕창으로 10여 차례 입원 치료와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상당한 고통에 시달렸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이 A의 우울증은 추락사고로 발생한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 등에 기인한 것이고, 피고 또한 업무와 우울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A의 우울 증세 등에 대하여 재요양 승인을 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A는 2016. 3. 15.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최종 진료일인 2018. 6. 26. 실시한 진료에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A의 주치의 소견과 같이 치료경과 중 우울증이 악화되었으나 A가 이를 숨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위 최종 진료일과 A의 사망일인 2018. 8. 19. 사이에 평소 자신을 간병하던 원고가 40일간 입원하여 평상시와 같은 간병을 받지 못하였고, 그 결과 자살 직전 욕창이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의 우울증은 추락사고로 발생한 하반신 마비와 욕창으로 유발 · 악화되었던 것임을 고려한다면, 원고의 입원 기간 A의 우울증이 유발 · 악화되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그렇다면 A는 업무 중 발생한 추락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오랜 기간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우울증이 발생하였다가, 자살 직전 욕창 증세가 재발하여 우울증이 다시 급격히 유발 · 악화되었고, 그 결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A의 우울증이 발생한 경위, 자살 무렵 A의 신체적 · 정신적 상황 등에 관하여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A가 기승인상병인 하반신마비, 욕창, 우울증 등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없거나 현저히 낮아져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추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업무상 재해에서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