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보존기간 안 지났는데 공군 항공기 윤활유에서 녹 발생…윤활유 납품업체 책임 25%"
[민사] "보존기간 안 지났는데 공군 항공기 윤활유에서 녹 발생…윤활유 납품업체 책임 25%"
  • 기사출고 2021.10.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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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채무불이행 해당"…계약해제는 불허

공군 항공기에 쓰이는 윤활유에 녹이 발생했다. 법원은 윤활유 포장용기에 표시된 보존기간 3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녹이 발생한 것은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며 윤활유 납품업체에 손해의 25%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박진수 판사는 9월 14일 국가가 윤활유 납품업체인 A사를 상대로 낸 소송(2019가단5209485)에서 A사의 책임을 25% 인정, "A사는 국가에 1,1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법무공단이 국가를, A사는 이영수 변호사가 대리했다.

국가는 2016년 9월 21일 터빈엔진용 윤활유 8,116 쿼트(QT)를 1쿼트(QT)당 미화 3.74 달러로 계산하여 총 미화 30,353.84 달러에 매수하는 계약을 A사와 체결하고, 세 달 후인 12월 21일 A사로부터 제조일자가 '2016. 9. 30.'로 된 윤활유 8,116쿼트(QT)를 모두 인도받고 대금을 지급했다. 당시 A사가 인도한 윤활유의 포장용기 캔 표지에는 '생산일로부터 36개월이 지나면 성분 테스트를 하고 사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Test date is 36 months from DOM")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군 군수사령부가 2019년 3월 14일 항공정비창에서 항공기 엔진 정비 후 엔진에 이 윤활유를 주입하는 작업을 준비하던 중 윤활유 덮개와 상단 부분에서 이물질을 발견하였고, 이후 추가로 윤활유 중 18쿼트(QT)를 개봉하여 샘플링 검사를 한 결과 같은 부위에서 동일한 이물질이 발견되었다. 이후 군수사령부 항공기술연구소에 의뢰하여 윤활유에서 발견된 이물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이물질은 철산화물인 녹(Rust)으로 확인되었다. 이물질이 발견되기 전까지 국가가 사용한 윤활유의 양은 702쿼트(QT). 이에 국가가 "보존기간 3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윤활유 포장용기인 캔에 부식이 발생하여 보관 중인 윤활유 7,414쿼트(샘플링 검사분 18쿼트 포함)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계약을 해제하고, A사를 상대로 계약해제에 따른 원상회복으로 남아 있는 윤활유 7,414쿼트에 대한 매매대금 3,300여만원의 반환과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윤활유 7,414쿼트를 구매하면서 지급한 부가가치세와 부대비, 문제의 윤활유를 대신하기 위해서 구매한 960쿼트의 매매대금 차액 지급 등 모두 4,700여만원의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박 판사는 물품에 대한 보호피막 처리 의무 위반 등 계약일반조건에서 정한 채무불이행을 인정했으나, 계약해제는 허용하지 않고, 손해배상책임만 인정했다.

박 판사는 먼저 "피고가 윤활유를 공급하는 매도인으로서 비록 제조사가 제조한 신품을 그 상태대로 공급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윤활유 제품 표지에 표시된 보존기간까지 사용에 적합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제조자로 하여금 적절한 포장용기를 선택하도록 하거나 도금이나 보호피막 등과 같은 특수처리를 하도록 하는 것(만일 포장용기의 사양을 변경할 수 없다면, 매수인인 원고에게 적절한 보관 및 관리방법을 고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계약에서 정한 피고의 의무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는 매수인인 원고가 제조자와 사이에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어 제조자를 상대로 직접 계약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피고는 이와 같은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윤활유에 대한 보존기간(2016. 9. 30.~2019. 9. 29.)이 지나기 전인 2019. 3. 14.경에는 윤활유 캔 표면에 부식(녹)이 발생하는 상황에 이르게 하였고, 이는 계약일반조건 제9조에 정한 '물품의 성능이 사용목적을 충족시키도록 물품(물품을 담는 용기 포함)의 표면에 보호피막 처리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원고는 A사와 윤활유 매수계약을 체결할 때 '2016년 국외조달(수리부속) 계약일반조건'과 '2016년 특수윤활유 계약특수조건'을 계약내용에 편입시키기로 합의했다. 

박 판사는 그러나 "윤활유에 대한 보존기간이 일부라도 남아 있다는 이유로 계약해제를 허용할 경우, 윤활유에 대한 보존기간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여 원고가 현재의 상태대로 반환하더라도 이를 진정한 원상회복이라고 볼 수 없고, 원고는 계약에 따른 품질보증기간(12개월)을 넘어 약 2년 6개월간 윤활유를 보관, 관리하면서 그 사용 가능성에 따른 이익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며 "이와 같은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는 그로 인한 계약해제는 신의칙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 대신 "피고는 (A사가 아닌) 제조자가 표시한 보존기간(36개월) 전에 녹이 발생하지 않도록 피막처리를 한 포장용기에 든 윤활유를 공급할 의무가 있음에도 계약일반조건 제9조를 위반하여 윤활유 중 7,414쿼트에 대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이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박 판사의 판단.

박 판사는 다만, "윤활유의 보존기간은 3년인데, 원고는 윤활유를 공급받은 지 2년 3개월(제조일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녹이 발생한 것을 확인하였고, 그 이전에는 사용에 문제가 없었으며, 그때까지 원고가 사용한 윤활유는 702 쿼트로 전체 물량(8,116쿼트)의 약 8.65%에 불과하고, 보존기간인 3년간 대체 구입한 물량(960쿼트)을 포함하더라도 전체 물량의 약 20%정도에 불과하여 보존기간 내에 원고가 공급받은 윤활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피고의 책임을 25%로 제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