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월급쟁이 사장'은 근로자
[노동] '월급쟁이 사장'은 근로자
  • 기사출고 2021.10.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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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유족급여 ·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하라"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더라도 실제 사업주가 따로 있고, 실제 사업주의 지휘 · 감독을 받아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이른바 '월급쟁이 사장'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패러글라이딩 업체의 사내이사 겸 대표였던 A씨는 2018년 11월 11일 1인용 패러글라이딩 비행 도중 추락 사고를 당해 숨졌다. 이에 A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A씨가 회사 대표자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당초 이 회사의 대표는 A씨의 손아랫동서인 B씨였으나 사고가 있기 약 4개월 전인 2018년 7월 3일 사업자등록상 대표가 A씨로 변경되었다.

A씨의 부인은 "A씨가 법인등기부에 형식적으로 대표자로 등기되어 있으나, 회사의 실질적 사업주인 B씨에게 고용되어 그의 지휘 · 감독 아래 일정한 보수를 받고 근로를 제공하였으므로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8월 27일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A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근로계약에서 정한 업무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사망하였으므로 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2020구합51372). 법무법인 현이 원고를 대리했다.

재판부는 "A는 회사의 형식적 · 명목적인 대표자로서 실제로는 사업주인 B에게 고용되어 그 지휘 · 감독 아래 일정한 노무를 담당하고 그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아 온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와 B의 인적관계, 원고가 제출한 근로계약서에 A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지 않고, 그 기재 내용이 근로계약서와 동일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A와 B가 2018. 7. 1. 근로계약서를 실제 작성하였는지 여부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A가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업무 내용을 실제로 모두 수행한 점, 증인 B가 법정에서 한 A의 채용 경위, 구체적인 근무 일정 및 근무 내용, 급여의 지급방식 등에 관한 진술이 근로계약서와 대체로 부합하는바, 위 진술을 의심할 특별한 사정을 찾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가사 A와 B가 2018. 7. 1. 근로계약서를 실제 작성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A의 채용 당시 A와 B 사이에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내용과 같은 합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하고, "회사의 주된 업무는 체험비행 및 교육 등으로서 대부분 B나 2인승 체험비행 자격증을 보유한 강사들이 담당하였고, A는 주로 회사의 마케팅 · 광고 등의 부수적인 업무 및 B가 출근하지 않았을 때 회사의 실무를 일차적으로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회사 운영과 관련하여 비교적 고액의 비용이 지출되는 경우나 인력을 고용하는 등의 업무에 관하여는 A가 B에게 보고하여 B가 의사결정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A가 회사의 대표자로 등기 · 등록된 후에도 회사의 주된 업무집행권 및 대표권은 여전히 B에게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 "A와 B가 근무일을 매주 3~4일로 탄력적으로 합의한 것은 계절 및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체험비행의 특성을 반영하였기 때문으로 보이고, 실제 체험비행이 가능한 계절에는 A의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가 일정하게 고정되어 A가 이에 구속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회사의 주식 전부를 실질적으로 B가 보유하고 있고, 회사의 법인계좌에서 B의 휴대폰 및 IPTV 요금이 지출되는 등 회사는 전적으로 사업주인 B의 계산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A는 근로의 대가로 지급받는 보수 외에 회사의 영업으로 인한 이윤 창출이나 손해 발생 등의 위험을 달리 부담한 바 없다"고 밝혔다. A씨는 고용보험을 제외한 국민연금,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었다.

재판부는 "근로계약서에서 정한 A의 업무 내용에 '2인승 체험비행 자격 취득을 위한 비행 연습'이 명시되어 있는 점, A가 체험비행 자격증 취득을 위하여 평소 시간 날 때마다 비행시간을 확보하였으며, 사고 당시에도 개인 GPS를 소지한 채 비행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A는 근로계약상 업무에 해당하는 개인 비행자격증 취득을 위해 비행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A는 근로계약에서 정한 업무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사고와 업무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 이 사건 사고 및 그로 인한 A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가 개인 비행자격증을 취득할 필요가 없었다거나 사고 당시 사적인 취미활동으로서 비행을 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