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10분간 5kg 박스 80개 화물차에 실은 후 쓰러져 사망…산재 아니야"
[노동] "10분간 5kg 박스 80개 화물차에 실은 후 쓰러져 사망…산재 아니야"
  • 기사출고 2021.09.1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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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산재 인과관계, 근로자가 입증해야"…기존 판례 유지

협력업체에 파견된 근로자가 약 10분 동안 약 5㎏의 박스 80개를 화물차에 실은 후 쓰러져 숨진 경우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은 근로자 측에 있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하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9월 9일 숨진 근로자 A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두45933)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A씨의 상고를 기각,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입사 후 회사의 협력업체에 파견되어 휴대전화 내장용 안테나의 샘플을 채취하여 품질검사를 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던 A씨는, 2014년 4월 19일 출근 후 오전 9시 54분쯤 동료 직원과 함께 약 10분 동안 약 5㎏의 박스 80개를 한 번에 2~3개씩 화물차에 실은 후 사무실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박리성 대동맥류 파열에 의한 심장탐포네이드(Cardiac Tamponade)'로 숨졌다. '박리성 대동맥류 파열에 의한 심장탐포네이드'는 심낭 내에 발생한 출혈이 심장을 압박하여 그 박동이 제한되거나 멈추는 상태를 말한다.

이에 A씨의 아버지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2001두7725)를 인용,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의 업무상 재해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므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A가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상병(박리성 대동맥류 파열에 의한 심장탐포네이드)을 일으켜 사망하였다고 추단하기 어려워 A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A씨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히 ①A씨가 협력업체에 파견된 근로자로 약 1개월 25일의 짧은 기간 근무하였고, 담당한 업무 내용도 업무의 강도가 높다거나 그 책임이 컸다고 볼 수 없는 점, ②이 사건 상병 발병 전 특별한 돌발 상황이나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는 없었고, 대동맥류 파열로 쓰러지기 직전 행한 박스 상차작업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 동료 직원이 상차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선의로 도와준 것인데 약 5㎏ 정도 박스 80개를 한 번에 2~3개씩 2~3m 정도 떨어져 있는 차량에 운반하는 것이어서 육체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③의학적으로 A씨의 기존질환인 박리성 대동맥류는 동맥경화에 의한 혈관의 약화에 의한 것으로 업무와 관련성이 낮고, 제1심 진료기록 감정의나 피고 자문의들도 과로나 스트레스로 A씨에게 대동맥 박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하거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A씨가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이 사건 상병을 일으켜 사망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업무상의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상고심에선 산재보험법 37조 1항에 의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이 근로복지공단에게로 전환되었다고 보아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산재보험법 37조 1항은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이라는 제목으로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 · 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유지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은 본문에서 업무상의 재해의 적극적 인정 요건으로 인과관계를 규정하고 단서에서 그 인과관계가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전체로서 업무상의 재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당인과관계를 필요로 함을 명시하고 있을 뿐,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전환하여 그 부존재에 관한 증명책임을 공단에게 분배하는 규정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고 지적하고, "2007년 개정으로 신설된 이 사건 조항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의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을 공단에게 분배하거나 전환하는 규정으로 볼 수 없고, 2007년 개정 이후에도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은 업무상의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기존의 판례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원심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A씨에게 돌발적 상황 및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감정결과 취신에 관한 증거법칙을 위반하였다거나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이어 "원심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근로자 측에 있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서도 단순히 원고가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사실관계의 진위불명 상황에서 증명책임을 지는 쪽에 불리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 아니라 A씨가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추단하기 어려워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인정하였다"며 "이와 같은 사실인정을 전제로 하면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피고에게 있다고 보더라도 피고가 상당인과관계의 부존재를 증명한 것이 되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결론은 수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