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니티-신창재 회장 풋옵션 계약은 '반쪽짜리 계약'
어피니티-신창재 회장 풋옵션 계약은 '반쪽짜리 계약'
  • 기사출고 2021.09.0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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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주식 가격산정방법 빠트렸다가 2조원 청구 물 건너가

9월 6일 결론이 나온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과 어피니티 컨소시엄 간의 풋옵션 관련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사건 판정은 신 회장과 투자자인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맺은 풋옵션은 유효하지만, 신 회장이 어피니티 측에서 제시한 주당 40만 9,000원, 정확하게는 409,912원에 풋옵션 주식을 매수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2조원이 넘는 풋옵션 주식 매수부담을 덜게 되었으나, 풋옵션 자체는 유효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다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고, 풋옵션 주식의 적정시장가치(FMV, Fair Market Value)를 도출하여 신 회장이 매수하거나 또는 투자자 측의 손해배상청구 등 추가적인 분쟁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풋옵션 자체는 유효"

ICC 중재판정부는 먼저 어피니티 등 투자자들이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5,000원에 매입하면서 주주간 계약을 통해 2015년 9월 30일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교보생명 지분을 신창재 회장 또는 신창재 회장이 지정한 제3자가 매수하고, 풋옵션 가격은 양 당사자들이 1명씩 선임하는 감정평가기관의 감정에 따라 정하기로 한 풋옵션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신 회장 측에선 '계약상 풋옵션 조항이 무효이기 때문에 본인의 가치평가기관 선임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의 무효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폿옵션 주식의 적정시장가치를 산정하는 절차적인 측면에선 신 회장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가 되었다. 2012년에 맺은 주주간계약에 따르면, 풋옵션 가격은 양 당사자들이 1명씩 선임하는 감정평가기관의 감정에 따라 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반면 당사자 일방이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가격을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피니티와 신 회장 사이에 분쟁이 발생, 중재가 제기되고, 중재판정에서도 이 부분이 핵심 쟁점이 되어 승패를 가르게 된 것이다.

교보생명이 기업공개를 실시하지 못하자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신창재 회장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하고 딜로이트 안진을 감정평가기관으로 선임했다. 딜로이트 안진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보유하고 있는 교보생명 주식의 가치를 주당 409,912원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풋옵션 행사에 신창재 회장이 응하지 않고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자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2019년 3월 신창재 회장을 상대로 딜로이트 안진의 평가 가격인 주당 409,912원에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교보생명 풋옵션 주식을 매수할 것을 요구하는 중재를 ICC에 제기한 것이다.

중재재판에서,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계약 문언과 당사자들의 의사에 비추어 볼 때 딜로이트 안진의 감정 결과에 따라 풋옵션 가격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중재판정부가 직접 적정한 풋옵션 가격을 정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창재 회장은 한국법상 계약 해석의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딜로이트 안진의 일방적인 감정 결과에 따라 풋옵션 가격이 정해질 수는 없고, 더 나아가 (최근에 내려진 두산인프라코어 사건의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추어 볼 때) 중재판정부가 직접 풋옵션 가격을 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번 ICC 중재는 한국법이 준거법, 중재지(seat)가 서울이어 절차법 등도 한국법이 적용되었다.

"딜로이트 안진 산정 가격에 매수할 의무는 없어" 

3년에 걸친 치열한 공방 끝에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이, 어피니티 측이 주장하는 딜로이트 안진이 산정한 가격에 풋옵션 주식을 매수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주주간계약에서 일방 당사자가 감정평가법인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풋옵션 가격을 정하는지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딜로이트 안진의 감정평가보고서만을 토대로 풋옵션 가격을 산정할 수는 없으며, 계약 문언에 반해 중재판정부가 직접 공정시장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계약을 다시 쓰는 것에 해당한다고 보아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풋옵션에 기한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이와 관련 신 회장 측 대리인으로 중재재판에 참여한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이러한 중재판정부의 판정은 (두산인프라코어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일방 당사자가 감정평가법인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풋옵션 가격을 어떻게 결정할지 여부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풋옵션 계약에 문언을 넘어선 의미를 함부로 부여하거나 국제중재판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며, 재무적투자자들이 투자 회수의 수단으로 풋옵션 계약을 작성, 체결할 때 중재판정부나 법원이 계약 문언 이상의 의미를 함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세세한 부분까지 합의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판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풋옵션 행사에 따른 매매대금 청구 외에 신창재 회장을 상대로 주주간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도 청구했으나, 연장선상에서 중재판정부는 이 청구 역시 기각했다. 이에 대해 어피니티 측은 "put option price 결정에 따라 청구할 손해배상금액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번 중재에서 손해배상금을 특정해 요청한 적이 없다"며 "중재판정부는 청구금액이 없으므로 신 회장이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말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신 회장의 계약 위반이 확정된 지금 지속적으로 위반 상태가 계속된다면 투자자들이 손해배상금을 산정하여 청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재판정부는 "신창재 회장이 30일 이내에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할 본인의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했다.

결국 3년에 걸친 ICC 국제중재의 결론은 풋옵션 자체는 유효하지만, 풋옵션 가격을 결정할 수 없어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에 따른 매매대금 또는 손해배상금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국제중재 변호사들 사이에선 어피니티가 풋옵션 계약을 맺으며 사실상 '반쪽짜리' 계약을 맺은 데 불과하고 주주간계약에 상대방이 가격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나 양측이 제시하는 가격에 차이가 날 경우의 해결방법을 추가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자문 실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재비용, 변호사비용 절반은 건져

ICC 중재판정부는 그러나 신창재 회장이 풋옵션 행사시 가치평가를 위해 마련된 사전 절차 사항 등 관련 계약상 의무를 위반한 점을 인정, 신 회장을 '패소당사자(the losing party)'로 지칭하고,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중재비용 전부와 변호사비용 50%를 추가로 부담하라고 명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으로서는 2조원대의 본안 청구에선 패소했지만, 중재비용과 변호사비용의 절반은 건지게 된 셈이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