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대한항공 여객기, WHCU 장치 결함으로 21시간 늦게 출발 했으나 배상책임 없다"
[손배] "대한항공 여객기, WHCU 장치 결함으로 21시간 늦게 출발 했으나 배상책임 없다"
  • 기사출고 2021.08.12 17: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지법] 불가항력 사유…피해 최소화 최선 인정

조종실 창문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창문 외부 표면에 성에나 안개가 생성되지 않도록 필요시 적정량의 열을 전달하는 WHCU 장치 결함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하려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21시간 30분 늦게 출발했으나, WHCU 장치의 결함이 불가항력적인 사유에 기인한 것이고, 대한항공이 승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이행한 점을 법원에서 인정받아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게 되었다.

서울중앙지법 박강민 판사는 6월 10일 A씨 등 승객 72명이 "항공기의 지연 출발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소송(2020가단5189556)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무법인 덕수가 원고들을, 대한항공은 법무법인 광장이 대리했다.

A씨 등 72명은 대한항공 항공기로 2018년 10월 19일 19:40(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12:55(한국시각)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10월 19일 19:10경 이 항공기에 WHCU 장치 관련 경고 메시지가 표시되는 것을 대한항공 정비팀이 발견, 20:30경 승객들에게 항공기의 지연 출발시각이 다음날 17:00로 정해졌다고 통지하고 조치에 나섰다. WHCU 장치는 조종실 창문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창문 외부 표면에 성에나 안개가 생성되지 않도록 필요시 적정량의 열을 전달하는 일종의 컴퓨터 장치로, 이 항공기에 2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중 조종실 중앙 왼쪽 창과 오른쪽 측면 창의 온도를 통제하는 1대에서 경고 메시지가 표시된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후 인천 국제공항에서 새로운 장치를 긴급 공수하여 10월 20일 15:20경부터 16:00경까지 새로운 장치를 항공기에 설치, 해당 항공기는 당초 출발예정시각보다 약 21시간 30분 늦은 10월 20일 17:10경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10:30경(한국시각)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A씨 등은 1인당 90만원씩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가 지연된 이유는 피고의 제어 · 통제 등의 조치가 불가능한 WHCU 장치의 결함에 기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원고들의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취하였다"며 "몬트리올 협약 19조 후문에 따라 책임이 면책된다"고 주장했다.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Convention for the Unification of Certain Rules for International Carriage by Air Done at Montreal on May 1999, 몬트리올 협약) 19조는 "운송인은 승객 · 수화물 또는 화물의 항공 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은 본인 · 그의 고용인 또는 대리인이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하였거나 또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판사는 먼저 대법원 판결(2013다81514 등)을 인용, "우리나라는 2007. 10. 30. 몬트리올 협약에 가입하여 2007. 12. 29. 국내에서 발효되었고, 출발지인 독일도 2004. 4. 29. 몬트리올 협약에 가입하여 2004. 6. 28. 발효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고, 이와 같이 출발지와 도착지가 모두 몬트리올 협약 당사자국이므로, 이 사건은 국내법에 우선하여 몬트리올 협약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다음은 대한항공에 몬트리올 협약 19조 후문에 따른 면책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

박 판사는 "WHCU 장치의 결함은 피고의 실질적인 통제를 벗어난 불가항력적인 사유에 기인한 것이고, 피고는 WHCU 장치의 결함을 발견한 후에 원고들을 비롯한 승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 역시 모두 이행하였다고 보인다"며 "따라서 피고에게는 항공기의 지연 출발에 관하여 몬트리올 협약 제19조 후문에 정한 면책사유가 존재한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박 판사는 "항공기는 수많은 장치와 부품으로 구성되고 고도의 기술이해를 요하는 첨단 기계장비이므로 항공기 제작사가 결함 등의 원인을 가장 잘 알 수 있을 뿐, 항공기를 이용하여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가 쉽게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피고와 같은 운송인은 항공기 제작사가 제공한 정비매뉴얼에 따라 정비를 할 수밖에 없고, 항공기 제작사는 운송인인 피고의 사용인이나 대리인도 아니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와 같은 운송인이 항공기 제작사가 제공한 정비매뉴얼에 따라 정비를 하였음에도 항공기에 결함 등이 발생하였다면 피고로서는 연착에 대한 책임을 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항공기의 제작사인 미국 회사가 제공한 정비매뉴얼과 그 매뉴얼을 토대로 작성되어 항공안전법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으로부터 인가받은 대한항공의 정비매뉴얼을 토대로 항공기를 정비 · 관리하여 왔는데, 위 각 정비매뉴얼의 내용에 따르면 WHCU 장치는 일종의 컴퓨터 장치로서 실시간으로 내부 결함을 자체 모니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의 정비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고, 점검사항 또한 기재되어 있지 아니하다.

박 판사는 또 "국토교통부가 인가한 최소 장비품 목록 규정(Minimum Equipment List)에는 서리가 내리는 구간을 운항하는 항공기의 경우 안전한 운항을 위하여 WHCU 장치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피고는 항공기가 약 10시간 동안 장기간 운항하고, 향후 기상예보가 변동될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여, 탑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WHCU 장치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피고의 판단이 비합리적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2018년 10월 19일 19:15경부터 게이트에서 대기하고 있는 원고들을 비롯한 승객들 약 350명에게 항공기 점검으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수차례 알렸고, 같은 날 19:45경 위 승객들에게 제공할 식음료를 주문하여 같은 날 20:00경부터 승객들에게 식음료를 제공하였으며, 같은 날 20:30경 위 승객들에게 숙박을 위한 호텔 객실과 교통편 등을 알렸다. 이후 승객들은 호텔에서 숙박하고 그 다음날 대한항공이 제공한 버스를 이용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도착한 다음 항공기에 탑승했다. 대한항공은 이후 위 승객들에게 전자우대할인권과 연결편 관련 비용을 제공했다. 항공기의 출발 지연과 관련하여 대한항공이 승객들을 위해 지출한 호텔숙박비, 식음료, 교통비용, 전자우대할인권과 연결편 관련 비용 합계는 약 8,400만원 가량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