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아파트 관리주체 동의 없이 게시된 현수막도 임의로 철거하면 재물손괴"
[형사] "아파트 관리주체 동의 없이 게시된 현수막도 임의로 철거하면 재물손괴"
  • 기사출고 2021.07.1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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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 관리소장에 벌금 70만원, 집행유예 1년 선고

아파트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게시된 현수막이라도 관리소장이 임의로 철거하면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 북구에 있는 아파트 관리소장인 A(여 · 47)씨는 2020년 6월 22일 오전 9시쯤 B씨가 아파트 분리수거장과 아파트 상가 앞 화단에 걸어놓은 '주민들 피해주는 소장 물러나라'라고 기재된 현수막 2개를 관리사무소에 있던 가위로 절단해 시가 합계 4만원 상당의 현수막 2개를 각각 손괴한 혐의(재물손괴)로 기소됐다.

대구지법 김남균 판사는 7월 8일 "이 범행은 피고인이 피해자 소유의 현수막 2개를 임의로 판단하여 현수막을 가위로 자르거나 그 끈을 잘라내는 방법으로 손괴한 것"이라며 A에게 벌금 7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2021고정115). 

A와 변호인은 "피고인이 철거한 현수막 2개는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게시된 것이었고, 피고인은 관리소장으로서 공동주택관리법령과 관리규약에 따라 불법 현수막 2개를 철거한 것"이라며 "피고인의 행위는 법률 또는 업무에 따른 것으로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그러나 "공동주택관리법 및 그 하위 법령 어디에도 법령에서 정한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아니한 표지물이나 게시물에 관하여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의 회장이 스스로 이를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나아가 공동주택관리법의 목적은 공동주택의 '관리'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투명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을 뿐(공동주택관리법 제1조), 공동주택의 입주민들의 분쟁까지 공동주택 입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거나 공동주택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에서 법이 정한 권리구제절차를 배제하고자 하는 취지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며 "공동주택관리 관리주체로서는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 표지물에 대하여는 어디까지나 자진철거를 청구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강제집행으로 구제받는 등의 법정절차를 통하여 위와 같은 '위반행위시의 조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철거한) 현수막의 내용은 '주민들 피해주는 소장 물러나라'라는 것인데, '피해'의 구체적인 내용이 적시되어 있지 아니하여 피고인의 명예에 중대하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침해를 유발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하는 점, ②피고인 또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피해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등의 법정절차를 취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긴급성이나 보충성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은 입주자등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려는 경우에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제3호에서 '공동주택에 광고물 · 표지물 또는 표지를 부착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고, 공동주택관리법 제63조 제1항 제7호 및 그 위임에 따른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제29조 제2호에 따르면 '입주자등의 공동사용에 제공되고 있는 공동주택단지 안의 토지,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에 대한 무단 점유행위의 방지 및 위반행위시의 조치'를 관리주체의 업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공동사용에 제공되는 공동주택단지 안에 표지물을 게시하기 위해서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하여 게시된 표지물에 대한 조치는 관리주체의 업무범위에 속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A와 변호인은 또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서 불법 현수막을 공동주택관리법령과 관리규약에 따른 조치행위로 철거, 제거할 수 있다고 잘못 인식하였고, 그와 같이 잘못 인식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①피고인은 관련 법령 및 관리규약을 스스로 검토한 결과 피고인이 스스로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현수막을 철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뿐, 관계 행정청 등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기관에 이를 조회해 보지는 아니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②피고인은 현수막을 제거하기 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부터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관리규약의 해석에 관하여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법치국가에서 사법절차를 통하지 아니한 자력구제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는 것인 점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이 범죄사실 기재와 같은 행위가 법률에 따른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서 적법하게 관리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고,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액수가 적은 점, 피고인은 더 이상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서 근무하지 아니하여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며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