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법] 헤이그 법원, 온실가스 배출 불법행위 첫 인정
[환경과 법] 헤이그 법원, 온실가스 배출 불법행위 첫 인정
  • 기사출고 2021.07.0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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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의 주의의무에서 온실가스 감축의무 도출"

2021. 5. 26.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이 석유회사 로열더치쉘(Royal Dutch Shell, 이하 "쉘")을 상대로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피고 쉘에게 파리협정 기후목표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다. 엑손모빌, BP, 쉐브론 등 대표적인 석유기업을 상대로 기후변화의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은 여러 차례 진행된 바 있지만 실제로 법원이 사기업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명령한 사례는 최초다.

Milieudefensie v. Royal Dutch Shell 사건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위법 또는 위헌으로 판단하는 사례는 2019년의 네덜란드 대법원의 Urgenda v. Netherlands 판결 이후 아일랜드 대법원,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서 유사한 판단이 이어지면서 기후소송의 확고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사기업의 경우 이미 당해 법제도가 정하는 온실가스 규제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와 관련된 법령 위반 사실이 없는 한 민사청구의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윤세종 변호사
◇윤세종 변호사

이 사건에서 원고는 쉘의 온실가스 배출, 또는 기업 차원의 감축 목표를 충분히 세우지 않은 것이 불법행위라고 주장하였다. 원고가 원용한 네덜란드 민법 제162조 제2항은 불법행위를 ①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 ②법률이 정하는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 ③ 사회상규에 따른 불문규범(unwritten law)을 위반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원고는 피고 쉘이 위 조항이 규정하는 '불문(不文)의 주의의무(unwritten standard of care)'에 따라 위험한 수준의 기후변화를 방지할 의무가 있고, 현재 온실가스 배출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파리협정이 정한 기후목표 수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하지 않을 경우 그 불법행위가 계속된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광범위한 피해를 고려할 때 인권의 보호와 관련한 국제조약을 통해서 '불문의 주의의무'의 내용으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도출될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특히 유럽인권협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법원은 현재 시점에서 피고의 배출행위가 당장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리 협정 상 기후목표에 부합하는 수준인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45% 감축할 의무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였다.

Scope 3 배출에도 노력의무 부과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법원이 이 사건에서 기업 배출량의 산출 범위 각각에 대해 세부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법원은 기업이 사업장 내에서 직접 배출하는 Scope 1 배출 및 온실가스 배출을 통해 생산한 전력, 열 등을 공급받아 소비하는 간접배출인 Scope 2 배출에 대해 절대량을 기준으로 감축의무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기업의 제품 소비를 통해 발생하는 Scope 3 배출에 대해서도 '노력의무(best efforts)'를 부과하였다.

Scope 3 배출은 산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통상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데, 특히 쉘과 같은 석유기업의 경우 생산제품인 천연가스와 석유의 소비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이 판결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전향적인 고민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집행도 허용

판결 선고 후 피고 쉘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헤이그 법원이 피고의 감축 의무 위반이 임박하였음을 이유로 판결의 가집행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피고 쉘은 회사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판결은 '불문의 주의의무'라는 네덜란드 민법의 법리에 기초한 것으로 다른 법체계에서도 동일한 판결이 확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의 진정한 함의는 민사법상 법리가 아니라 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해 사법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의 변화라고 판단된다. 기후변화 대응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기초해 타결된 2015년 파리협정 체결 이후로도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파리협정의 기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해마다 더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부가 기후변화 문제를 입법부나 행정부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는 "정책 또는 정치의 영역"에 놓고 사법심사를 자제하는 것이 국민의 인권과 헌법상 기본권에 대한 침해를 방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의 청소년들이 지난해 3월 정부의 미온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 현재 심리가 진행 중에 있다.
◇한국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의 청소년들이 지난해 3월 정부의 미온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 현재 심리가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을 시작으로, 지난 1년간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호주, 벨기에에서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는 사법부의 판단들이 연달아 나왔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민사소송에서도 유의미한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된다. 현재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기후소송이 1천여건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사소송에서도 전기 마련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19명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한국의 현재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배출 비중, 역사적 책임, 경제적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으로 국제적인 비난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국회, 산업계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를 보면 아직도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가 앞으로 기후변화의 본격적인 피해를 마주해야 할 다음 세대를 포함한 국민들의 헌법상 기본권의 문제라는 점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윤세종 변호사(기후솔루션, sejong.youn@forourclimat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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