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강제징용 손배소, 하급심 판사가 전원합의체와 정반대 판결
[손배] 강제징용 손배소, 하급심 판사가 전원합의체와 정반대 판결
  • 기사출고 2021.06.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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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상급심 판단, 대법 판례 변경 여부 주목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강제연행되어 강제로 노동에 종사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2013다61381)한 것과 정반대의 판결이 하급심 판사에 의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에 대한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 및 대법원의 판례 변경 여부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 부장판사)는 6월 7일 강제징용 피해자인 송 모씨 등 85명이 일본제철 · 닛산화학 · 미쓰비시중공업 · 스미세키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2015가합13718)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며 원고들의 소를 모두 각하했다. 이번 판결은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2018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의 소수의견과 동일한 결론으로, 원고 대리인은 강길 변호사, 피고들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장, 태평양, 두레가 나누어 대리했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 및 그에 관한 양해문서 등의 문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위나 체결 당시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따른 후속 조치 등을 고려하여 보면, 이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이렇듯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고, 위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따르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식민지배의 적법 또는 불법에 관하여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일괄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의 청구권 등에 관하여 보상 또는 배상하기로 합의에 이른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는 청구권협정에 구속되고, 이에 더하여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에 그동안 체결된 청구권협정 등 각종 조약과 합의, 청구권협정의 일괄처리협정으로서의 성격, 각국 당국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한 언동 등은 적어도 국제법상의 '묵인'에 해당하여 그에 배치되는 발언이나 행위는 국제법상 금반언(estoppel)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이 사건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협약 제27조와 금반언의 원칙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따라 국내적 사정 및 국내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효력은 유지되고, 그와 같은 경우의 강제집행은 확정판결이 실체적 진실과 어긋나며, 앞서 본 바와 같이 금반언의 원칙 등 신의칙을 위반함으로써 판결의 집행 자체가 권리남용에 해당되어 청구이의의 소 및 그 잠정처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에 더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본안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마쳐질 경우 국제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역효과 등까지 고려하여 보면, 강제집행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고 결국 이 사건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소구할 수 없는 권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헌법상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를 위하여 국내법적으로는 법률의 지위에 있는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그 소권이 제한되는 결과가 된다"며 "이 법원은 헌법기관으로서 헌법과 국가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을 수호하기 위하여 위와 같이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판결은 당초 6월 10일 선고될 예정이었으나, 재판부가 갑작스럽게 선고기일을 앞당겨 7일 오후 선고했다. 이 때문에 85명의 원고 중 단 한 명도 재판에 참석하지 못한채 선고가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선고기일 변경은 당사자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더라도 위법하지 않은바(대법원 63다851, 62다567, 2001다14023 판결 등),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결선고기일을 변경하고, 소송대리인들에게는 전자송달 및 전화연락 등으로 고지하였다"고 설명하고, "변론속행을 구하는 당사자들이 있으나 이 판결 결과는 민사소송법 제219조에 의하여 무변론 소 각하도 가능한 것이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송씨 등 85명은 "피고들이 노동력확보라는 목적 아래 일본제국의 한반도 침탈에 편승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을 일본으로 강제연행한 후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한 채 강제로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아니하여 피해자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고, 국내에 돌아온 이후 현재까지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며 및 미지급임금과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1억원씩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