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통신] 사우디와 이란-적대관계에서 화해모드로?
[중동통신] 사우디와 이란-적대관계에서 화해모드로?
  • 기사출고 2021.06.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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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변호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정부 대표가 4월 9일 바그다드에서 만나 예멘 내전 및 이란 핵합의 재개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이란 측에서 먼저 "양국의 이익, 지역 평화와 안정에 일조할 것"이라며 회동 사실을 인정하였고, 뒤이어 사우디 고위관리도 지역 긴장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란 정부와 대화하였음을 밝혔다. 보다 극적으로, 4월 27일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란은 이웃 국가"라며, "이란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이란이 성장하고 번창하기를 바란다. 핵 프로그램, 지역 대리세력 지원,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등에 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는 내용의 미디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두 나라 관계는 중동 정세의 핵심축

◇배지영 변호사
◇배지영 변호사

중동 정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중동 지역 분쟁의 가장 중요한 축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중동 지역의 다양한 분쟁들은 양국의 갈등과 핵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2015년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이란이 서구 및 미국과 관계개선 조짐이 보이자 이에 불안을 느낀 사우디가 강경한 정책을 펼치면서 예멘, 시리아, 레바논 등 지역의 외교 및 군사 현안을 둘러싸고 양국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평가되는 예멘 내전이 2015년부터 본격화되고, 2016년 1월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종교지도자 47명을 집단 처형하였으며, 이란은 같은 해 주이란 사우디대사관을 방화하면서 양국은 단교 국면으로 치달았다. 2018년 3월에는 빈살만 왕세자가 이란 최고지도자를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면 사우디도 똑같이 핵폭탄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고 있는 많은 중동 국가들 중에서도 유독 현실 정치에 종교적인 요소를 많이 투영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사우디는 "지고하신 알라의 경전과 그분의 사도의 순나"를 헌법으로 삼고 있는 국가이며(사우디아라비아 통치기본법 제1조), 이란은 이맘의 부재시 "이슬람법 전문가가 이맘의 권위와 인도의 책임을 지게" 하는 '이슬람공화국'이다(이란 헌법 제1조, 제5조).

그러다보니 서로를 향한 적대적인 수사에서도 종교적인 언어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를 표면적으로만 분석하게 되면 양국의 긴장관계가 본질적으로 순니-시아의 종파주의적 갈등, 즉 역사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신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 나오게 된다.

순니-시아파의 분열

이슬람의 역사에서 순니-시아파 분열의 시초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하는 무슬림 공동체 지도자를 어떻게 선출할 것인지에 대한 방식의 차이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카르발라 전투(A.D. 680년)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에게 무함마드의 손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의 일가가 몰살된 사건으로 인해 상징적으로 굳어졌다고 본다. 카르발라 전투는 소수 종파인 시아파가 매년 종교적 의식(시아파 최대의 종교행사인 아슈라/타수아)을 재현함으로써 중요한 정서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소재가 된다. 이후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이란 사파비 왕조는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주민의 다수가 순니파였던 이란 지역을 시아파의 중심지로 개종시키고, 18세기 아라비아 반도를 통치했던 사우드 가문은 가장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이슬람 교리인 와하비즘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상황이 사우디-이란 종파 경쟁의 역사적 배경이자 시발점이라고 이야기된다.

물론 사우디와 이란의 앙숙관계를 고대 종파적 차이로만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다. 종교 교리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보다는, 대립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교리의 차이를 확대하고 활용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무엇보다도 종파의 대립만으로는 적잖게 등장했던 양국의 '사이좋은 시절'을 설명하기 어렵다. 1960-7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국면에서 이란과 사우디는 모두 미국의 맹방으로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여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으며,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끄는 범아랍주의의 영향에 반대하는 전선을 구축했다.

이란 혁명으로 관계 악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이란과 사우디 관계를 악화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는데, 이는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아랍 국가들의 전복을 직접적으로 촉구하였고, 이에 사우디 왕정이 자국 내 석유 매장량의 대부분이 속해 있는 시아파 다수지역인 동부 지방에서 이란에 동조하는 시위가 발생하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심화되었다. 그러나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면서 국 관계는 호전되었고, 1997년 5월 당선된 개혁주의자인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사우디를 방문하여 파흐드 국왕을 만난 후 "서로의 내정에 대한 비간섭, 국가 주권과 독립에 대한 존중, 지역의 국가를 묶는 종교와 유산의 유대에서 비롯된 평화적 공존"을 표방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4월 초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이란 핵협상 복귀에 관한 협의가 늦어도 6월 초에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란으로서는 핵합의와 경제제재의 해제가 국내 정치, 경제에서 너무나 중요한 상황이다 보니,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동 외교정책에 간접적으로나마 호응하기 위해 사우디와의 대화에 나선 것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우디가 왜 이러한 이란의 행보에 동참하고 있는지는 설명이 쉽지 않다. 사우디는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핵합의를 성사하는 과정에서 이를 강하게 반대했었고,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도 "새로운 핵합의는 이전의 핵합의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며 "우리는 이란 핵합의 협상 과정에서 사우디 등 인접 국가들과 충분히 협의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예전만큼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나) 장애물로 활약할 의사를 내비쳤다. 현재 사우디의 행보는, 특히 작년 8월 걸프지역에서 사우디를 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UAE와 이스라엘간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이란과 이스라엘-사우디 연합의 대결국면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던 예상에서도 크게 빗나간 것이다.

사우디, 이란 행보에 동참

어쨌거나 이 의외의 현상에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동 외교정책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인권 문제 등으로 인해 전통적 우방이었던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가 불편해졌다. 그 외에도 유가를 좌우할 수 있었던 석유 종주국으로서의 과거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사우디가 이란과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이 자원수출, 무역환경 불안정 문제로 연결되는 상황을 해소하고자 하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웠을 수도 있다. 불안한 안보적 상황에 대한 국민적 인식, 특히 예멘 후티 반군과의 오랜 교전에 막대한 재정지출이 발생하고 반군의 공격으로 원유 생산 시설에 타격을 받기도 하면서 배후의 교전당사국인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속단은 이르고, 아직은 단기적인 목적을 위한 일시적인 제스처일 것이라는 분석에 보다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사우디-이란의 대립관계는 역사적인 증오보다는 정치와 지역안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정상적인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특히 그간 미국의 개입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긴장이 완화될 수도 있다. 만약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중동 내 가장 큰 갈등이 해소되는 것으로 양국관계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 군사, 외교적 변화가 예상된다. 이래저래 이란 핵협상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동은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두바이=배지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jiyoung.ba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