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증거 남기려고 폭행 장면 촬영···초상권 침해 아니야"
[손배] "증거 남기려고 폭행 장면 촬영···초상권 침해 아니야"
  • 기사출고 2021.05.2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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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위법성 조각"

형사절차에 사용할 증거를 남기기 위해 폭행 장면을 촬영한 것은 초상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아파트의 입주민인 A씨는 2018년 4월 9일 오후 9시 30분쯤 자신의 아파트에 찾아와 층간소음에 대해 항의하는 부녀회장 B씨와 다툼을 벌이다가 B씨를 폭행하여 상해를 입혔고, B씨는 A씨의 폭행 장면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A씨는 이에 앞서 2018년 2월 14일 아파트 단지 내에 관리사무소에 신고하지 않은 현수막을 게시하던 중 입주자인 C씨로부터 제지를 당하자 C씨에게 욕설을 하였다. 그러자 B씨가 휴대전화로 이 장면을 촬영하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전송했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관리소장과 동 대표 14명에게 이 동영상을 전송했다. 이에 A씨가 폭행 장면과 현수막 게시 장면을 촬영한 B씨와 C씨,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등을 상대로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B씨에게 500만원의 지급을 요구하는 등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가 "B가 2회에 걸쳐 원고를 촬영한 행위는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한 행위에 해당하나,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하자 A씨가 상고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도 4월 29일 A씨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2020다227455).

대법원은 먼저 "초상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위 침해는 그것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거나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유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으나,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의 공개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더라도,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해당하고,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내용 · 방법 등이 부당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폭행 장면 촬영 부분에 대해, "당시 층간소음 문제로 감정이 격해져 욕설과 폭력이 행사될 가능성이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형사절차와 관련하여 증거를 수집 · 보전하고 전후 사정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이를 촬영할 필요가 있었고, 결국 위 촬영행위는 형사절차상 증거보전의 필요성과 긴급성, 방법의 상당성이 인정되므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원고의 폭행 장면을 촬영한 것이 초상권을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한 원심은 위에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고 밝혔다.

현수막 게시 장면 촬영 부분에 대해서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 제3호에 따르면 입주자는 공동주택에 광고물 · 표지물 또는 표지를 부착하는 행위를 하려는 경우에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원고는 동의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현수막을 게시하였고, 원고가 게시한 현수막의 내용은 관리주체의 아파트 관리방법에 관한 반대의 의사표시로서 자신의 주장을 입주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공적 논의의 장에 나선 사람은 사진 촬영이나 공표에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원고에 대한 동영상이 관리주체의 구성원에 해당하는 관리소장과 동대표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전송되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의 현수막 게시 장면을 촬영한 것은 행위 목적의 정당성, 수단 · 방법의 보충성과 상당성 등을 참작할 때 원고가 수인하여야 하는 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원고의 현수막 게시 장면을 촬영한 것은 초상권 침해 행위라고 보면서도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