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장애인 차별 시정' 윤정노 변호사
[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장애인 차별 시정' 윤정노 변호사
  • 기사출고 2021.05.11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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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휠체어 전용공간 정면 보게 설치하라"

"그동안 하급심 법원에서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한 적극적 구제조치 청구가 일부 인정되어 오긴 했지만, 대법원에서 차별행위 시정의 구제조치를 인정한 첫 사례입니다. 선례로서 의미가 큰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로3가역 승강기 설치 관철

◇윤정노 변호사
◇윤정노 변호사

2010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정노 변호사는 일찌감치 태평양 내의 공익활동 그룹인 장애인팀에 참여해 장애인을 위한 공익소송을 수행하는 등 공익활동에 관심이 많은 로펌 변호사 중 한 명이다. 특히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져 2013년 교통약자를 위한 종로3가역 엘리베이터 설치 청구소송을 제기해 엘리베이터 설치를 관철하고, 서울과 경기도 사이를 운행하는 시외버스 회사 2곳을 상대로 시외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장애인의 버스 이용을 위한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하라는 이른바 시외 이동권 소송의 공동대리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2015년 여름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설치하라"는 1심 일부승소에 이어 2019년 초 항소심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받아 현재 상고심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윤 변호사가 지난 4월 1일 대법원에서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2층 광역버스를 운행하는 김포운수를 상대로 저상버스뿐 아니라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버스도 교통약자용 좌석을 구비해야 하고, 교통약자용 좌석은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 따라 버스의 진행 방향으로 길이 1.3미터 이상, 폭은 출입문 방향으로 0.75미터 이상이어야 한다는 의미 있는 판결을 받아냈다.

결과적으로 김포운수의 해당 버스에 뒷쪽 출입문을 향해 설치된 길이 1.3미터, 폭 0.97미터의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장애인도 버스 진행 방향을 보고 앉게 버스의 긴 방향과 평행하게 1.3미터 이상의 길이를 확보하라는 주문이나, 이러한 내용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내기까지 윤 변호사 팀에서 기울인 노력은 간단한 게 아니었다.

경기도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구비한 2층 광역버스가 도입되었으나 휠체어 전용공간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불편함을 접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경기도지부가 김포운수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1심 재판 결과는 전부 패소였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경기도지부에선 2017년 여름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법인인 재단법인 동천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동천으로부터 사정을 전해 들은 윤정노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힘을 보태드리기로 하고 태평양에 전담팀을 꾸려 동천의 공익전담변호사들과 함께 본격적인 변론에 나섰다. 물론 수임료를 받지 않는 공익소송으로 진행했다.

수임료 안 받고 공익소송으로 진행

첫 번째 쟁점은 "휠체어 승강설비가 설치된 버스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길이 1.3m 이상, 폭 0.75m이상 확보하여야 한다"는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의 해석 문제. 시행규칙에서 정한 교통약자용 좌석의 길이가 '버스의 긴 방향' 즉, 진행방향 기준 세로를 의미하는 내용인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현장 확인 등을 통해 버스의 실제 이용 상황을 파악한 윤 변호사는 재판부에 현장검증을 신청했다. 재판부로부터 허락을 받은 윤 변호사는 재판부와 함께 김포의 차고지를 방문, 해당 버스의 휠체어 전용공간에 휠체어 승객을 탑승시켜 현재의 좌석 방향이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한지 재판부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했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방향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고, 버스가 급정거, 급출발할 때마다 휠체어가 심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현장검증은 성공이었다.

◇대상버스의 노면도
◇대상버스의 노면도

항소심 재판부는 "휠체어 사용자가 버스의 진행 방향과 직각 방향으로 착석한 상태에서 버스가 운행될 경우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버스의 급정거 또는 급출발 등 움직임에 따라 버스의 전진 방향을 바라보고 착석하여 이동하는 다른 승객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이 사건 버스에 마련된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버스 정면을 응시하는 다른 승객들의 좌석 방향과 달리 버스 측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이 일반 좌석의 전방에 마련되어 있어서 장애인은 탑승한 시간 내내 자신의 모습이나 표정이 일반 승객들의 정면 시선에 위치하게 되어 장애인으로서는 상당한 모멸감, 불쾌감 또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바, 이는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현장검증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판결문에서 생생하게 밝혔다.

그다음 쟁점은 구제조치의 필요성. 윤 변호사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에선 '법원은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등의 판결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선례가 부족했기 때문에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조마조마했는데, 청구취지대로 구제조치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선고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며 "2007. 4. 10. 제정되어 2008. 4. 11.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적극적 조치를 대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한 의미 있는 쾌거"라고 거듭 기뻐했다.

저상버스 아니어도 교통약자용 좌석 확보해야

비록 저상버스가 아니더라도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버스는 버스 진행방향으로 길이 1.3미터 이상, 폭 0.75미터 이상의 교통약자용 좌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대목도 의미 있는 부분으로, 앞으로 이 판결 내용대로 교통약자용 좌석을 갖춘 버스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성과학고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윤정노 변호사는 2004년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다. 태평양에서의 주된 업무는 상사 · 경영권 분쟁, 제조물책임 · 소비자집단소송 등 기업소송. 비록 로펌 변호사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지만, 마음 한켠엔 늘 '공익', '인권'과 같은 단어와 멀어지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남아있었다는 윤 변호사는 일찌감치 태평양 장애인팀에 합류했고, 몇 해 전부터는 장애인팀 팀장을 맡고 있다. 2018년부터 장애인법연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윤 변호사는 "사실 나는 기업간 분쟁 사건을 주로 다루는 것이 본업인 로펌 변호사이고, 공익활동은 제 능력을 조금이나마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한 것일 뿐"이라며 "이번 사건에서도 동천의 공익전담변호사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고 겸손한 말을 잊지 않았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