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변회 창립 100주년에
서울변회 창립 100주년에
  • 기사출고 2007.07.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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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변호사]
서울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물론 100주년이라는 단어에 아직 입회 초년생을 멀리 못 벗어난 내가 100이라는 숫자 이상의 남모르는 감동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변호사회의 옛 모습을 더듬어보면서 감개무량할 선배변호사들은 만감이 교차하리라.

◇김학성 변호사
서울회 창립 100주년이란 의미는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역사는 단군 할아버지가 세운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고, 우리나라의 변호사사(史)는 서울회로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 만하고 한판 잔치를 벌일 만한 의미가 생긴다. 그래도 시큰둥하는 분들을 위해서 좀 거창하게 의미부여를 해 본다면, 100년 전에 서울변호사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성리학적 중세사회에서 근대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는 역사적 입증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물론 역사구분에 대해 반론은 많겠지만!).

따져보면 100년의 세월이란 대한제국의 신민, 일제 천황의 신민, 대한민국 국민의 신분증을 차례로 내놓아야 하는 역사의 두께를 가진다. 이 1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 내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육이오 언제쯤인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셨다는 그 인물 좋았다던 이모도 만날 수 있을 게다. 서울회도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 이런 굴곡어린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역사가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원래 연대기의 나열만으로 흐르는 역사는 지루하게 되어 있고, 달빛 받으며 평상에 앉아 소주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듣는 옛날 이야기가 재미있는 법이다. 물론 집안 옛날 이야기에 어디 영광만 있으리오. 궁상과 오만과 오욕도 있겠지만, 그래도 100년이나 버텨온 것만 해도 그게 어디인가. 서울회 100년사에 대한 이런 옛날 이야기도 1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회에서 내어놓는다는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본 것 같다. 졸견을 감히 말해 본다면 연대기적 딱딱한 체제보다는 연의(演義)적인 체제라면 더욱 재미있겠지만 엄격한 춘추필법을 존중하는 동도 제현께서는 반대하시리라. 어찌되었든 이 100년사 집안내력 발간의 의미는 적지 않을 것 같다. 곰곰 생각해 보면, 갈수록 지사(志士)풍이나 선비형의 변호사는 사라져가고, 생존경쟁에 내몰린 헝그리 복서형이 많아져가는 것이 오늘날의 솔직한 변호사 세계가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빛바랜 족보 책 들고 우리 집안이 그래도 유서 있는 집안이었다고, 몸가짐 교육시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하다고 하면 어처구니없는 망발일까.

이제 쓸데없는 사설은 그만하고, 위와 관련한 서울회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서울회는 6월에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순회 무료법률상담, 7월에 변호사 명예교사의 생활법률교육 실시, 9월에 국제학술심포지엄 개최, '시민과 함께하는 마라톤 대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서울회의 기념 이벤트에 나도 한 구석 참석하게 되어, 6월 2일 월계 이마트에 하루 종일 나가서 법률상담을 하였다. 서울회 직원분이 호객꾼 역할을 하고 나를 포함한 변호사 4명이 매장복도에 카드 영업사원처럼 가느다란 탁자를 놓고 앉아 있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구경이 의외로 재미가 솔솔했다. 다만 홍보부족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의외의 곳에서 변호사에게 다가서기 서먹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상담하는 시민이 예상보다 적었던 것은 작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런 이벤트성의 행사참석을 빼고는 나 같은 말석의 변호사로서는 먹고살기 바빠서 시민을 상대로 한 공익적 봉사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우연찮게 모 중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회의의 위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는데(이 회의에는 법조인이 의무적으로 한 명 들어가게 되어 있다고 한다), 가해학생에 대하여 엄벌이 마땅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유독 그 가해학생의 담임선생님만이 한 번만 선처해 주면 자기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정하는 것을 보았다. 아! 저 스승의 진정이 보람이 있어야 하련만… 하지만 세상사는 항용 진정이 배신당하는 수가 많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갑자기 언제나 나를 격려하고, 장래를 기대하셨던 어린 날의 한 선생님이 생각났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벗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neoksrd@paran.com)

◇대한변협신문에 실린 글을 변협과 필자의 양해아래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