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송무 법률서비스 증가 불구 변호사시험은 송무 편향"
"비송무 법률서비스 증가 불구 변호사시험은 송무 편향"
  • 기사출고 2021.04.1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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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훈 교수 "쟁점발견형 비중 늘려야"

한국 법률시장은 꾸준한 매출 증가와 함께 비송무 분야와 국경간 법률서비스가 증가하고 있으나 미래의 변호사를 교육하는 로스쿨에선 변호사시험의 압박, 판례의 무비판적 추종, 소장과 반소장 등을 작성하는 기록형 시험에의 지나친 경도 등으로 인해 학생들의 관심 영역과 진로 전망이 축소되고, 법원에서 벌어지는 전통적 송무만이 법률가의 직역이라고 생각하는 습성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4월 12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주최한 '변호사시험 제도의 바람직한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서울대 로스쿨의 천경훈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지적하고, "법학교육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의 시야를 '국내 송무'로 국한시키는 것은 법률가의 성장 가능성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4월 12일 열린 '변호사시험 제도의 바람직한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서울대 로스쿨의 천경훈 교수가 주제발표하고 있다.
◇4월 12일 열린 '변호사시험 제도의 바람직한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서울대 로스쿨의 천경훈 교수가 주제발표하고 있다.

천 교수는 2018년에 천 교수가 서울대, 고려대 로스쿨 학생들을 상대로 직접 설문조사한 내용부터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로서 안정적으로 활동하려면 일정 기간 송무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라는 설문에 대해 '매우 동의' 40.6%(서울대 33.9%, 고려대 56.6%), '다소 동의' 55.0%(서울대 60.6%, 고려대 41.5%)로, '동의한다'는 대답이 95.6%(서울대 94.5%, 고려대 98.1%)에 달한다. 천 교수는 중소규모 법전원과 지방 법전원의 경우에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할 것으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위와 같은 인식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시민사회 등의 '비송무' 영역으로의 진출을 꺼리는 심리적 기제로 작용할 수 있고, 실제로 법전원 제도 도입의 취지와 달리, 도입 후에도 변호사들의 송무집중 현상은 완화되고 있지 아니한데,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학생들의 인식 문제도 존재하고 있고, 그러한 인식이 형성된 데에는 변호사시험 준비 과정에서의 송무 편향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것이 천 교수의 의견이다.

반면 법률시장에선 송무변호사의 수임료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민사본안 사건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송무사건 수는 정체 상태인데 비해 비송무 분야 및 대형로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의 사건접수 건수를 100으로 놓았을 때 법원의 민사본안 사건접수 건수의 변동추이는 2011년 100.7, 2012년 106.7, 2013년 111.8로 늘어났다가 2014년 116.0, 2015년 103.6, 2016년 100.7, 2017년 105.2, 2018년 99.6, 2019년 99.2로 2013년을 정점으로 2014년 이후 감소 또는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법원 사건접수 지수(2010년=100) (가사는 1심, 나머지는 전심급)
◇법원 사건접수 지수(2010년=100) (가사는 1심, 나머지는 전심급)

반면 법무법인 및 개인 변호사들의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신고액 합계로 측정한 국내 법률시장 매출규모는 2010년 3.1042조원에서 2011년 3.4706조원, 2012년 3.6096조원, 2013년 3.8778조원, 2014년 4.2182조원, 2015년 4.6373조원, 2016년 5.0623조원, 2017년 5.4158조원, 2018년 5.9335조원, 2019년 6.3438조원으로 변호사 숫자 증가와 함께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천 교수는 "같은 기간 송무사건 수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한국 법률시장의 전체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은 비송무 분야 및 대형로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법률서비스도 꾸준히 증가해 2020년의 경우 법률서비스 대외지급은 1조 7,471억원, 법률서비스 수입(收入)은 1조 236억원으로, 법률서비스 무역시장 규모가 2조 7,707억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 천 교수는 "약 2.8조원의 법률서비스 무역시장 규모는 국내총매출 약 6.3조원에 비추어 보아도 상당히 큰 비중에 해당하는 수치"라며 "대부분의 법률가와 법학교수들은 '내국인(내국기업)의 국내사무'만을 법률시장으로 생각하고 법학교육도 이를 전제로 이루어지지만, 실제로는 광대한 섭외 업무 영역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국경간 법률서비스 영역, 특히 국내기업에 대한 아웃바운드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은 해당 외국의 법률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해당 외국의 변호사들을 관리하고, 그러한 정보를 취합하여 고객에게 전략적 조언을 제공하는 능력"이라며 "주요 영미 로펌들이 이런 분야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갈파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 법률시장의 추세는, 변호사 수의 급증으로 인한 경쟁 심화, 변호사 수의 증가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꾸준한 매출 증가, 송무사건 수의 정체, 비송무 및 국경간 법률서비스의 증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

천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변호사시험 개선방안의 하나로 사례형 시험의 경우, 최근의 추세는 문제별로 일일이 쟁점을 특정하여 물어보는 '쟁점제시형'이 대다수이나, 사안 자체는 단순하게 구성하되 스스로 쟁점을 발견하게 하는 '쟁점발견형'의 비중을 늘려야 하며, 기록형 문제도 판사실무가 아닌 변호사실무에 부합하는 서면작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천 교수는 "법률가로서는 '물어본 문제에 대한 판례가 무엇인가'보다, '이 사안에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이는 인공지능이 판례검색 등 리서치 기능을 가져갈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