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면책불허 9년 후 다시 파산신청 했다고 무조건 각하 위법"
[파산] "면책불허 9년 후 다시 파산신청 했다고 무조건 각하 위법"
  • 기사출고 2021.04.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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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법] "기계적 불허 대신 '파산절차의 남용' 여부로 가려야"

종전 사건에서 파산채무자의 면책이 기각 또는 불허가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다시 낸 파산신청을 기계적으로 불허해선 안 되고, 파산신청을 하게 된 기간, 경위, 의도 등을 종합하여 재도의 파산신청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져 기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서울회생법원 결정이 나왔다.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하고 있는 대법원결정과 다른 취지의 결정이어 주목된다.

2007년 3월 파산선고 결정을 받아 확정되었으나 그해 11월 면책불허가결정을 받아 2008년 7월 확정된 채무자 A씨는 9년이 지난 2017년 10월 다시 파산 및 면책을 신청했다. 제1심법원이 2018년 7월 "이 사건 파산신청은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불허가결정을 받았음에도 면책을 받을 목적으로 동일한 원인으로 재차 파산신청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파산신청을 각하하자 즉시항고(2018라467)했다.

서울회생법원 제20부(재판장 서경환 부장판사)는 그러나 2020년 4월 17일 A씨의 항고를 받아들여 "오로지 '재도의 파산신청'이라는 이유만으로 파산신청을 각하한 제1심결정은 위법하다"며 파산신청을 각하한 1심결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1심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 비록 1년 전의 선고이나 사안이 중요하여 최근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결정문을 입수해 소개한다.

재판부는 "채무자는 2007. 3. 23. 파산선고 후 사기파산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음이 없이 10년이 경과하여 채무자회생법 제574조 제1항 제3호에 의하여 복권되었으나, 채무자는 2007. 11. 27. 면책불허가결정을 받아 확정되었고 현재에도 과중한 채무를 부담하고 있으므로, 지금이라도 다시 파산신청을 하여 면책을 받을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다"며 "채무자가 다시 파산신청을 하게 된 기간, 경위, 의도 등을 종합하여 보더라도 이 사건 파산신청이 채무자회생법 제309조 제2항에서 정한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하는 대법원결정들을 소개하고, "특별한 법적 근거도 없이, 종전 사건에서 면책이 기각 또는 불허가되었다는 사정만 있으면 '예외 없이'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한다고 선언한 이 사건 대법원결정들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채무자가 다시 파산신청을 하게 된 기간, 경위, 의도 등을 종합하여 재도의 파산신청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채무자회생법 제309조 제2항(채무자에게 파산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파산신청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파산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을 적용하여 파산신청을 기각하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1. 8. 16.자 2011마1071 결정에서 "파산결정을 받았으나 면책불허가결정을 받아 그 결정이 확정된 후에는 동일한 파산에 대한 재차 면책신청이나 오로지 면책을 받기 위하여 '동일한 파산원인'으로 재차 파산신청을 하는 이른바 재도의 파산신청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고, 이러한 대법원의 재도의 파산신청에 대한 판시는 ①'면책신청기간이 도과하여 면책신청이 각하된 자'의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한 결정(대법원 2006. 12. 21.자 2006마877 결정)을 시작으로 ②'면책기각결정이 확정된 자'의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한 결정(대법원 2009. 11. 6.자 2009마1583 결정), ③'면책불허가결정이 확정된 자'의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하는 결정(위 2011마1071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울회생법원 재판부는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하는 대법원결정을 수용할 수 없는 이유로, 먼저 채무자회생법에는 재도의 파산신청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채무자회생법 제559조 제2항에서 "면책신청이 기각된 채무자는 동일한 파산에 관하여 다시 '면책신청'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을 뿐, 면책신청이 기각된 채무자가 다시 '파산신청'을 할 수 없다는 명문의 규정은 없고, 채무자회생법 제564조 제1항 제4호에서 면책허가결정을 받고 7년이 경과하지 않은 채무자는 면책불허가사유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다시 파산신청을 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은 없다. 또 채무자회생법 제309조 제2항은 "채무자에게 파산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파산신청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파산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인데, 대법원결정들은 동일한 파산원인으로 다시 파산신청한 것이 '파산절차의 남용'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심리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종전 사건에서 면책이 기각 또는 불허가되었다는 사정만 있으면 '예외 없이'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한다고 선언하고 있고, 그 근거 법규에 대한 설명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하급심에서도 법규가 아니라 이들 대법원결정에 근거하여 재도의 파산신청에 대하여는 기계적으로 부적법 각하결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권리보호의 이익과 관련해서도, "대법원결정이 채무자회생법상 명문의 근거 규정이 없음에도 재도의 파산신청을 불허하는 이유는 이미 파산신청을 하여 파산선고를 받았는데, 동일한 파산원인으로 다시 파산신청을 하는 것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개인채무자의 경우 파산선고를 받은 후 복권되지 않으면 각종 직업상 · 신분상 결격사유에 해다한다는 법규정이 200여개 이상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채무자가 스스로 파산신청을 하는 이유는 파산선고를 받은 후 면책 · 복권을 받기 위해서"라고 지적하고, "파산선고는 받았지만 면책이 기각되거나 불허가되어 기존 채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음은 물론, 추가적으로 파산선고에 따른 각종 직업상· 신분상 불이익을 받고 있는 채무자가 이로부터 탈피하기 위하여 다시 파산신청을 하는 것이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대법원결정의 판시는 지나치게 형식논리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법률의 근거도 없이 채무자에게 재도의 파산신청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균형에 맞지 않으므로, 종전에 파산선고를 받았으나 면책결정을 받지 못한 채무자에 대하여 재도의 파산신청을 허용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하급심 법원에선 이들 대법원결정이 지니고 있는 법리적 · 실무적 문제점, 채무자에게 영구적으로 갱생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점, 특히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신청을 취하한 후 동일한 파산원인으로 다시 파산신청을 하는 것도 대법원결정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허용될 수 없는 점 등의 사정 때문에, 파산선고를 받았다가 면책신청이 기각되거나 면책을 불허가받은 채무자가 다시 파산신청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파산원인'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매우 엄격하게 하여, 사실상 채무자에게 새로운 파산  · 면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