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임원 승진 전과 다름 없이 대표 지시 받고 근무…근로자"
[노동] "임원 승진 전과 다름 없이 대표 지시 받고 근무…근로자"
  • 기사출고 2021.02.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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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원] "퇴직금 지급하라"

전무직함으로 이라크 공사현장의 현장소장으로 있다가 퇴직했더라도 임원 승진 후 승진 전과 다름 없이 대표이사의 지시를 받아 근무했다면 근로자에 해당, 퇴직금을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985년 8월 평사원으로 A건설회사에 입사한 B(71)씨는 2010년 상무이사, 2014년 전무이사로 승진해 2016년 11월부터 이라크에 있는 공사현장의 현장소장(프로젝트 매니저)으로 일하다가 2017년 4월 퇴직한 뒤,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 퇴직금 9,4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2019가단92182)을 냈다. A사는 B씨가 상무로 승진한 이듬해인 2011년 4월 주주총회, 같은해 5월 이사회를 열어 임원에 대해서는 연봉제를 시행하고 퇴직금은 지급하지 않기로 했고, 이에 따라 B씨는 입사한 때부터 2011년 5월까지의 기간에 관한 퇴직금 1억 1,800여만원을 일시에 지급받았다. B씨는 그러나 퇴사하면서 임원으로 일한 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요구했다. 임원이라고 하지만 임원 승진 이전과 다름 없이 근무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회사는 B씨가 임원임을 내세워 퇴직금 지급을 거부했고,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1985. 8. 1. 회사에 입사하여 2017. 4. 29. 퇴사할 때까지 근로자로 일하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원고가 퇴직할 무렵 근로자가 아닌 임원으로서 피고와의 고용관계가 아닌 위임관계에 따라 일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사에서 상무이사, 전무이사의 직함을 가지고 일하였지만 회사의 이사로 등기되지는 않았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전진우 판사는 12월 18일 B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는 원고에게 퇴직금 9,4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전 판사는 "원고는 1985. 8. 1. 피고에게 고용되어 일하기 시작하여 상무이사 및 전무이사로 일한 기간을 포함하여 2017. 4. 29. 퇴직할 때까지 피고에게 고용되어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였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B씨는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라 공사 현장 등 지정된 근무지에서 일하였고, B씨가 스스로 근무지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B씨는 공사현장에서 소장으로 근무하는 기간에도 출근부에 서명을 하였고, 휴가 사용시에는 휴가계획서를 작성했다. B씨는 업무 수행과정에서 대표이사 등 본사에 지속적으로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았으며, 회사의 경영상 의사결정에 관여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았다. B씨는 현장소장으로 일하면서 업무일지에 현장소장으로 결재하였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구체적인 공정 진행 상황 확인, 세부적인 공사 방법 협의, 도급인이나 협력 업체들의 요구 사항에 관한 대처 방안 결정 등 이미 정하여진 업무의 구체적인 수행방안에 관한 것이고, 어떠한 경영상 판단을 하였다고 볼 만한 기재는 발견되지 않았다. A사는 B씨가 이사가 된 후에도 퇴직금을 지급하거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며, A사는 2011년에 B씨의 입사 시점부터 상무이사로 일한 기간을 포함한 정산 시점까지의 퇴직금을 정산하여 B씨에게 지급하였으나, 위 퇴직금 지급 전후로 B씨가 수행한 업무와 지위에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전 판사는 대법원 판결(2012다10959)을 인용, "회사의 임원이라 하더라도, 업무의 성격상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보기에 부족하고 실제로는 업무집행권을 가지는 대표이사 등의 지휘 · 감독 아래 일정한 노무를 담당하면서 그 노무에 대한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아 왔다면, 그 임원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의 임원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 전체의 성격이나 업무수행의 실질이 위와 같은 정도로 사용자의 지휘 · 감독을 받으면서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라면, 그 임원은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특히 대규모 회사의 임원이 전문적인 분야에 속한 업무의 경영을 위하여 특별히 임용되어 해당 업무를 총괄하여 책임을 지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등기 이사와 마찬가지로 회사 경영을 위한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왔고 일반 직원과 차별화된 처우를 받은 경우에는, 이러한 구체적인 임용 경위, 담당 업무 및 처우에 관한 특수한 사정을 충분히 참작하여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지를 가려야 한다"고 밝혔다.

B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의 황철환 변호사는 "등기 여부를 떠나 기업 임원이 근로자에 해당하는 지에 대한 다툼이 많아지고 있다"며 "큰 추세는 단순히 고액 임금을 받고 상무이사, 전무이사 등의 직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성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