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IP Law] 영업비밀 관리 판단기준
[리걸타임즈 IP Law] 영업비밀 관리 판단기준
  • 기사출고 2021.02.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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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관리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면 비밀관리성 인정 여지"

급변하는 기술 · 정보사회에서, 기업의 혁신과 노하우가 담긴 영업비밀 정보는 기업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은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영업비밀로서 보호하고 있는데, 본 기고에서는 영업비밀 분쟁사건에서 가장 많이 다투어지고 있는 "비밀관리" 요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보안"은 상대적 개념

"비밀관리" 또는 "보안"은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두고 모두에게 강제할 수 없는 개념이다. 보안 강화는 기업에 비용 부담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업무효율 저하와 같은 반작용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은 다소 추상적 요건을 정하고, 법원이 실제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형태로 운용될 수밖에 없다.

◇이석희 변호사(좌) · 김태연 변리사
◇이석희 변호사(좌) · 김태연 변리사

1991년 부정경쟁방지법에 처음 영업비밀 보호가 명문으로 도입되었는데, 이때부터 20년 이상 비밀관리의 기준은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할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그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시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그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 ·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였고, 비밀 표시 내지는 고지, 접근제한조치나 비밀유지의무 부과 여부, 비밀정보 반출에 대한 통제 절차 등 객관적인 비밀유지조치가 있는지 여부를 기초로 비밀관리 요건을 판단하였다.

그러나 '상당한 노력'의 기준에 대하여 법원이 다소 엄격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기업의 정보가 제대로 보호를 받지못한다는 평가와 함께, 최근 기업의 영업비밀에 보다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2015년 "상당한 노력(substantial effort)" 규정을 "합리적 노력(reasonable effort)"으로 변경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상당한 노력" vs "합리적 노력"

"합리적 노력" 기준을 적용한 사례 중에는 2016년 의정부지방법원의 여행사 사건의 판결이 주목할 만하다. 여행 전문업체인 피해회사에 근무하던 피고인이 피해회사의 '고객정보'를 퇴사 직전 USB에 옮기는 방법으로 취득하여 퇴사 후 사용한 것이 문제된 사건에서, 1심 법원은 비밀표시나 사내 임직원에 대한 접근 제한 조치가 없었던 점 등을 들어 '비밀관리 요건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법개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비밀관리성을 인정하였고(의정부지법 2016노1670 판결),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대법원 2016도17110 판결).

위 사건에서 법원은 비밀관리성 판단에 고려할 요소들로, (1)물리적/기술적 관리(비밀구역 출입통제, 전산 보안 조치 등), (2)인적/법적 관리(보안서약서 징구, 보안관리규정 시행 등), (3)조직적 관리(보안책임자 지정 등) 등 종전 "상당한 노력" 규정일 때 검토되던 사항들 외에, 그 조치가 합리적이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기업의 규모, 정보의 성질/가치, 정보 접근에 관한 영업상의 필요성, 영업비밀 보유자와 침해자 사이의 신뢰관계의 정도, 과거 영업비밀 침해당한 전력이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밝혔다. 이러한 기준에 기초하여 법원은 피해자 회사가 직원 4명, 연매출액 2억원 정도의 소규모 가족 회사라는 점, 해당 정보에 외부인은 접근할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피고인이 해당 정보가 영업비밀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 회사가 비밀관리에 합리적 노력을 다하였다고 인정하였다.

한편 의류 소재 회사의 영업비밀 침해가 문제된 사건에서는, 1심 법원이 위 여행사 사건 판결의 판단기준을 인용하여 적극적으로 비밀관리성을 인정하기도 하였으나(의정부지법 2016가합54329 판결), 항소심 법원은 '원고가 중소기업임을 감안하더라도, (1)보안관리규정의 미실시, (2)해당 정보가 보안시스템에 미등록, (3)보안관리자 미지정/대외비 미표시 등의 사정을 들어 완화된 기준 하에서도 비밀관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7나2042188 판결).

위와 같이 최근 "합리적 노력" 기준에 따른 법원의 사례들을 보면, 비밀관리성 판단에 있어서 회사의 규모와 해당 정보의 가치 등을 개별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종전 "상당한 노력" 기준에서보다 좀 더 중소기업에 유리한 판단이 나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합리적 노력" 문구도 삭제

하지만 "합리적 노력"으로의 완화로도 종전 "상당한 노력"과 대비하여 실무상 변화가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2019년 개정에서는 "합리적 노력"이라는 문구도 삭제되어, '비밀로서 관리'되면 영업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렇다면 "합리적 노력"이라는 기준도 삭제된 현행 부정경쟁방지법에서는 어떤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직 법 시행 이후 시간이 많이 경과하지 않은 관계로 직접 참고할만한 법원의 판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법 개정의 취지와 문언에 비추어 볼 때 비밀관리성 인정의 요건기준이 완화될 것이라 보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또 종전 '상당한' 또는 '합리적'과 같이 비밀관리 조치를 정량적, 정성적으로 평가하여 기준을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보보유자가 그 정보를 비밀로서 관리한다는 사실이 어떤 형태로든 외부에 드러나기만 한다면 비밀관리성 요건이 인정된다고 볼 여지도 있다. 어쨌든 여전히 객관적 기준은 명확하지 않으며 향후 법원의 판단이나 실무, 학계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분야일 것이다.

일본의 '영업비밀관리지침'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사례도 참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부정경쟁방지법 역시 우리 현행법과 유사하게 비밀관리 요건에 관하여 '비밀로서 관리되고 있을 것(秘密として管理されている)’이라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2015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보호를 위한 기준을 담은 '영업비밀관리지침'을 작성하여 공표하였다. 법적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우리 관계기관도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를 마련하고 입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물론 기준을 마련하더라도 상시적으로 법 적용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모니터링하고 기준을 개정하는 노력을 취해야 함은 물론이다. 근래 특허청 영업비밀보호센터가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해오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영업비밀의 구체적 관리 방안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다가 영업비밀 유출 사건 발생 후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들을 다수 목격하였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오고 있고 법원의 판단도 그에 따라 변화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다만, 아직 개정법 적용에 관한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향후 축적되는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검토, 분석하여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편 기업으로서는 법 개정 전의 기존 사례를 참고해서라도 기업 수준이나 규모에 맞는 적절한 보호 조치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석희 변호사 · 김태연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shlee3@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