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하도급법 위반에 따른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처분성
[공정거래] 하도급법 위반에 따른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처분성
  • 기사출고 2021.02.0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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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변호사]

지난 해 여름 서울고등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위반 사업자에 대하여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한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 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서울고법 2020. 8. 13. 선고 2019누41906 판결, 이하 "이 사건 판결"). 공정위의 결정이 다른 기관에 대한 '요청'에 불과함에도 그 처분성을 인정하고, 요청 상대방이 아닌 입찰참가자격제한 대상자에게 해당 요청의 취소를 구할 이익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공정위는 위 판결에 대하여 상고하였는데, 얼마 전 심리불속행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 기간이 경과하였으므로,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을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처분성을 부인한 기존 판례

종래 대법원은 공정위가 서울특별시교육청장에게 한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처분성을 부정한 바 있다(대법원 2000. 2. 11. 선고 98두5941 판결). 공정위의 위 요청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64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한 협조의뢰로서 행정기관 상호간의 행위에 불과하여 처분성을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각 행정기관이 기속된다는 법문상의 규정이 없고, 이러한 협조의뢰를 받은 각 행정기관은 독자적 판단에 따라 그에 따른 행정처분을 하고 이에 대해 별도의 불복절차로 다툴 수 있으므로, 그 처분성을 인정할 실익도 없다는 것이다(원심인 서울고법 1998. 2. 18. 선고 97구7457 판결 참고).

◇신사도 변호사
◇신사도 변호사

공정위는 이 사건 판결의 소송과정에서 위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며,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이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행정기관 상호간의 협조의뢰로서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 대하여 직권발동을 촉구하는 의미에 불과하고, 그 자체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관계 행정기관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이 내려지면 이를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 있으므로 처분성을 확대할 필요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등의 취지로 본안 전 항변을 하였다.

대상 사업자의 법률상 불이익

하도급법 제26조 제2항은 공정위가 법 위반 사업자에 대하여 벌점을 부과하고, 그 벌점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요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5호,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계약법") 제31조 제1항 제5호는 각 중앙관서의 장,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공정거래법 또는 하도급법을 위반하여 공정위로부터 입찰참가자격제한의 요청이 있는 자'에 대하여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즉,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하도급법 위반 사업자에 대하여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과 그에 따른 각 중앙관서의 장, 지방자치단체장의 입찰참가자격제한이 모두 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공정거래법은 공정위로 하여금 법 위반 사업자에 대해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요청하도록 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다만, 시정조치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관계 행정기관 기타 기관 또는 단체의 장에게 필요한 협조를 의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공정거래법 제64조 제3항).

위와 같은 관련 법률의 문언에 비추어 보면, 하도급법 위반에 따른 벌점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사업자에 대하여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과 이에 근거한 관계 행정기관의 장의 자격제한이 기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지만(다만, 관계 행정기관의 장은 입찰참가자격제한의 기간을 정함에 있어 일정한 재량을 가질 뿐이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은 공정위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발주기관에 대한 협조의뢰의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고, 그 요청에 따른 발주기관의 입찰참가자격제한이 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여부는 단언하기 어렵다.

결국 (공정거래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하도급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이 이루어지면 해당 사업자에게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입찰참가자격제한을 받을 구체적 · 현실적 위험이 발생하므로, 그로 인한 법률상 불이익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에 대한 항고소송 인정 필요성

대법원은 후속적인 조치가 예정된 선행결정의 위법성을 다투는 다수의 사례에서, "장차 있게 될 법적 불안에서 미리 벗어나도록 길을 열어주고, 관련된 법적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여 그 선행결정의 항고소송 대상적격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8두38932 판결 등).

그런데 하도급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은 불특정 다수인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 대하여 이루어지고, 그 요청을 받은 각 중앙관서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원칙적으로 요청대상 사업자에 대하여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 경우 해당 사업자는 각각의 절차에서 공정위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위법성과 그 제한기간 결정에 고려되어야 할 사유들을 개별적으로 주장 · 소명해야 하고, 이에 불복하는 경우 각 기관별로 내려진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의 취소를 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가 해당 사업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함은 물론 그 법적지위와 상태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임은 당연하다.

이에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대상이 된 사업자로 하여금 항고소송을 통해 해당 요청의 위법성을 다툴 수 있게 함으로써 장차 있게 될 법적 불안에서 미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이와 관련된 법적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법치행정의 원리에 부합할 것이다(다만, 공정거래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은 발주기관에 대하여만 이루어지게 되므로 그 요청에 대하여 항고소송을 인정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며, 위 대법원 98두5941 판결에서도 이러한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하도급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은 벌점 경감 · 가중사유의 조사, 심사보고서 송부, 위원회 심의 등 공정위가 법 위반 사업자에 대해 시정명령 · 과징금 납부명령 등을 부과하는 절차와 유사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결정문 송달을 통해 외부에 표시되고 있으므로, 그 절차와 방법에 비추어 보아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 또는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권리구제 범위 확대

이 사건 판결은 공정위의 결정 형식이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 대한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령에 따른 해당 요청의 효력과 그로 인한 요청대상 사업자의 불이익, 신속하고 근본적인 법적 분쟁 해결의 필요성, 공정위의 결정 절차와 방법 등을 고려하여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항고소송 대상적격을 인정한 것으로서, 향후 그 대상이 된 사업자가 법원을 통해 공정위 요청의 실체적 · 절차적 위법성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결론은 행정에 대한 사법심사 및 이를 통한 국민의 권리구제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항고소송의 대상을 확대하는 대법원 판결의 최근 경향에 부합하며, 향후 상고심 판결을 통해 공정위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처분성 인정이 확정되길 기대한다.

공정위 예규인 「입찰에 있어서의 부당한 공동행위 심사지침」은 입찰담합에 대한 조치 중 하나로 과거 5년간 입찰담합으로 받은 벌점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사업자에 대해 발주기관에 입찰참가자격제한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해당 예규는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규칙에 불과하므로, 이를 근거로 공정거래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 및 그에 따른 발주기관의 입찰참가자격제한을 기속행위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공정거래법에는 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의 명시적 근거가 없으므로 이러한 요청이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 대한 협조의뢰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침익적 행정처분의 근거 법령에 관한 엄격해석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그 협조의뢰를 ‘국가계약법 등에서 입찰참가자격제한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입법론적으로, 국가계약법 등에 규정된 입찰참가자격제한 요건과의 조화 및 체계적 해석을 위해 공정거래법에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에 관한 근거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사도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sado.shin@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