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과 국내 대형 PE사들과의 사이에 진행되고 있던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지분 매각 관련 소송(이하 'DICC 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지난 1월 14일 선고되었다(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8다223054 판결). DICC 소송은 두산인프라코어 측이 투자금 회수를 위한 매각 작업에 협조하지 않는 등 주주간 계약서상 약속한 부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DICC의 2대 주주인 사모펀드들이 제기한 소송으로, 분쟁의 대상이 된 금액 자체가 원금 기준으로 7천억원이 넘을 뿐만 아니라 소송의 결과에 따라 두산그룹 구조조정의 주요 경제적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법조계와 경제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었다.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은 PEF의 자금 회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법적 쟁점에 관해 명확한 판시를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PE 업계 종사자들이 PEF 운용 전략을 세우는 데 여러 시사점을 준다.
동반매도요구권 행사 주주도 협조의무 인정
우선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은 투자회수 단계에서 동반매도요구권 행사와 그 과정에서 필요한 협조의무의 의미에 관해 명백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①매도주주가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할 것을 전제로 매각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 주주간 계약의 상대방 당사자인 두산인프라코어에게 매도주주가 진행하는 매각절차의 상황과 진행단계에 따라 DICC 지분의 원활한 매각을 위해 적기에 DICC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 DICC를 실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협조할 신의칙상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②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한 매도주주도 상대방 당사자인 두산인프라코어의 요청이 있는 경우 매수예정자가 진정으로 매수할 의향이 있는지, 인수 목적이나 의도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제공하는 등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원심판결과 달리 대법원은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한 매도주주도 상대방 당사자가 확인해야 할 필수적 사항에 관한 정보제공 등 협조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판시는 PEF를 운용하는 GP가 투자회수 단계에서 주주간 계약 등 PEF 투자 과정에서 작성된 계약서 조항에 대한 형식적 해석에만 경도되어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희생이나 의무 이행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투자대상 회사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은 또한 펀드조성(fundraising), 투자(investment), 투자관리 및 기업가치 증대(monitoring), 투자회수(exit), 펀드 해산 · 청산, 차기 펀드조성 준비로 이루어지는 PEF의 성장주기 중 투자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투자계약서 작성 작업, 구체적으로는 투자금 회수 장치를 면밀하고 섬세하게 마련하는 작업이 성공적인 투자회수의 기본전제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DICC 소송에서 문제된 투자계약서 조항은 DICC 주주간 계약 중 동반매도요구권 조항의 선택채권에 관한 부분 및 두산캐피탈의 중국 현지 법인(DCFL)에 관한 주주간 계약의 지분유지 의무 조항이다.
먼저 DICC 주주간 계약의 동반매도요구권 조항을 살펴보자. 해당 조항은 DICC가 3년 내 상장하지 못할 경우 일방(매도주주)이 그 소유의 DICC 지분을 매도할 수 있고 그때 상대방의 DICC 주식까지 함께 매도할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동반매도요구권), ①매도주주가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하면 그 상대방은 그에 동의하거나(x항), ②자신이 매도주주의 DICC 주식 전부를 매도결정통지에 기재된 가격 또는 사전에 약정한 가격 중 자신의 선택에 따른 가격으로 매수하거나(y항), ③보다 유리한 조건의 새로운 제3자에게 매도할 것을 제안할 수 있도록(z항) 정하였다. 원심은 위 각 조항이 대등한 병렬적인 선택채권이라는 입장이었으나, 대법원은 (y항)과 (z항)은 동반매도요구권의 상대방에게 기본 원칙인 (x항)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동반매도요구권의 구체적인 문구가 투자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게 기재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투자자들이 강력한 투자회수 도구인 동반매도요구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DCFL 주주간 계약의 지분유지 의무 조항도 "두산 측 주주는 두산캐피탈로 하여금 DCFL에 대한 지분비율을 현재와 같이 그대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어 두산그룹 측이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것인지 명백하지 않았다. 이 조항의 해석에 관해 대법원은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의 기재가 있는 문언에 '최대한 협조한다' 또는 '노력하여야 한다'고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 계약서의 전체적인 문구 내용,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사자가 그러한 의무를 법률상 부담할 의사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러한 문구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의무로 보아야 한다’고 하여, 두산그룹 측의 지분유지 의무 및 그에 관한 채무불이행 사실을 인정했다. '최대한 협조한다'는 문구 등 계약 당사자의 일반적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선언적으로 기재했다고 볼 수 있는 조항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의무라고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판시한 것이다. 이는 반대로 계약서의 문언 자체가 보다 명백하게 의무가 확인될 수 있도록 작성되었었다면, 두산그룹 측이 섣불리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소장 접수 후 5년 지나 대법 판결 선고
마지막으로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은 투자자와 투자대상 회사 사이에 선의에 기반한 투자회수 절차가 필수적이며, 소송을 통한 투자회수 방법이 합리적인 선택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은 소장이 접수된 2015년 11월 19일로부터 5년이 지난 2021년 1월 14일에야 선고되었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에서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천억원 대의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투자자나 투자대상 회사 모두에게 결코 이익이 되는 행위가 될 수 없다.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에서 명백하게 판시된 것처럼 만약 투자자들이나 두산그룹 측이 모두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해석하고 협심하여 합리적인 투자회수 방향을 모색했다면, 양측 모두 수년 전에 막대한 이익을 얻고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펀드나 회사를 운영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은 국내에 도입된 지 16년이 지난 PEF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투자계약 문언에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칙, 즉,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자금 투자 과정에서 투자자들과 투자대상 회사들이 서로 협조하고, 신의에 바탕을 두고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민법의 기본원칙이 PEF 투자에도 엄연히 적용되며, 이러한 원칙에 바탕을 둔 PEF 투자 및 운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철학이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서 DICC 소송 대법원 판결이 PEF 투자 및 운용에 관여하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훌륭한 교본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당사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PEF 투자 관련 법리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배기완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gwbae@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