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태평양전쟁 위안부 강제동원, 일본 정부에 배상책임 인정 이유는…
[Close Up] 태평양전쟁 위안부 강제동원, 일본 정부에 배상책임 인정 이유는…
  • 기사출고 2021.01.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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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주권면제 이론 적용 불가"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 부장판사)가 1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의 일부로 1억원씩을 청구한 소송(2016가합505092)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씩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나, 일본 정부가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파장은 한일간 외교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일간 외교 갈등 확산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문을 입수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근거 등을 상세히 알아보았다.

재판부는 먼저 '국내 법원이 외국 국가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인 국가면제 또는 주권면제 이론의 적용 여부와 관련,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국가면제의 국제관습법에 의하더라도 위 국제관습법이 국가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재판권이 면제되므로 주권을 가진 국가라면 예외 없이 타국의 재판권의 행사에서 면제되어야 한다고 볼 수는 없고, 일정한 경우에는 그 예외가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이 사건 행위(한반도에 거주하던 원고 등을 유괴하거나 납치하여 한반도 밖으로 강제 이동시킨 후 위안소에 감금한 채로 상시적 폭력, 고문, 성폭행에 노출시킨 일련의 행위)는 당시 일본제국에 의하여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며, 당시 일본제국에 의하여 불법점령 중이었던 우리 국민인 원고 등에 대하여 자행된 것으로서,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국가면제가 관행으로 정착된 국제관습법이라고 하더라도, 피고가 인도에 반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까지 피고에 대한 재판권을 면제한다는 내용의 관습법을 적용하게 되는 경우,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에 대하여 인도에 반하는 중범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 여러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하여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여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불합리하며, 헌법을 최상의 규범으로 하는 법질서 전체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아니하여 정당성이 없으므로, 그와 같은 경우까지도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국제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에도 원고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는 드러나지 아니한 채 한일 양국간 배상이나 보상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였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스스로 입을 열어 피고(일본국)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면서부터 논의의 쟁점이 되었고, 피고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를 운영하였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정부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보상 혹은 배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여러 차례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되었고,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법원에 제기한 소송의 결과 또한 같았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청구권협정과 박근혜 대통령 시절 성사된 '2015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 또한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협상력이나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개인에 불과한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소송 외에 구체적인 손해를 배상받을 방법이 요원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이 사건의 당사자들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대한민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인정하고, "이 사건 행위 당시의 국제조약, 일반적인 국제관습법과 일본제국의 국내법, 전후 전쟁범죄에 관한 국제형사재판소의 헌장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행위는 당시 일본제국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 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일본제국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 등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할 것이며, 일본제국의 후신으로서 동일성이 인정되는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 등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

재판부는 손해배상의 범위와 관련, "가해행위의 불법성의 정도와 원고 등의 당시 연령 및 '위안부'로 고통받은 기간, 당시의 환경과 자유 억압의 정도 등 원고 등이 입은 피해의 정도, 원고 등이 귀국 후에 겪은 사회적 · 경제적 어려움, 불법행위 이후 상당한 기간 피해복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아니한 점, 기타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 등을 종합해 피고가 지급하여야 할 위자료는 적어도 원고 등에 대하여 각, 100,000,000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원고들이 손해배상의 일부로 구하는 각 1억원씩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청구권협정 등 불구 배상청구권 소멸 안 해"

재판부는 1965년 6월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에 의해 '위안부'로 동원된 한국인들의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 소멸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일본제국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다"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과와 그 전후 사정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은 일본제국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정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간의 재정적 ·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하고,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피고는 일본제국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을 원칙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본제국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015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에 의한 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해서도, "위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 여부를 한국 정부에 위탁한 바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별도의 위임이나 법령의 규정 없이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처분할 수 없으므로 위 합의에 의하여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맞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위 합의는 한일 양국간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국가 대 국가로서의 정치적 합의가 있었음을 선언하는 데 그친 것이라고 보인다"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위 합의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위 합의에 의하여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강원 변호사가 원고들을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