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구두 민원 제기에 현장 확인 안 했어도 직무유기 무죄"
[형사] "구두 민원 제기에 현장 확인 안 했어도 직무유기 무죄"
  • 기사출고 2021.01.0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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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의식적인 직무 포기 인정 곤란"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2월 10일 축분장(축산분뇨처리시설)에 관하여 구두로 민원을 제기받았으나 현장 확인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보령시청 공무원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3384)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보령시청에서 건축신고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17년 10월 11일경부터 12월 28일경까지 민원인으로부터 구두로 4차례에 걸쳐 보령시 천북면에 증축 중인 축분장에 관하여, '설계도상에는 기존 건물과 증축 건물이 붙어서 설계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떨어져서 시공되고 있고, 건축주 B씨가 사용신고를 하지 않고 위 축분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민원을 제기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현장에 임장하여 위와 같은 위법사항을 확인하고, 건축주로 하여금 공사를 중지시키고 위법사항의 시정을 명하거나 그 건축물의 사용을 제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위법사항을 해소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민원인은 4차례에 걸쳐 A씨의 사무실에 방문하고 2차례 A씨에게 전화를 하여 민원을 제기했으며, 형법 122조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해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형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다소의 태만, 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것이거나 소홀히 직무를 수행한 탓으로 적절한 직무수행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이를 넘어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정도의 형법 제122조에서 정하는 직무유기죄에서 정하는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민원인의 구두에 의한 민원을 들은 후 조속하게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등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피고인이 2018. 1. 7.경 인사이동으로 인하여 피고인의 업무가 후임자에게 이관되어 피고인이 해당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기한이 넉넉하지 않았던 점, 피고인이 진술하는 업무환경(피고인은 자신이 담당하는 연간 서면 접수 민원이 약 1,200건을 초과하며 실시간으로 다수의 업무를 처리하여야 하는 바쁜 상황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업무관행(피고인의 후임자도 수사기관에서 구두나 전화 접수 민원만 있는 단계에서는 곧바로 현장 확인을 하지는 않는 것이 통상적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이관된 후 업무처리 경과 등을 참작하여 보건대, 피고인이 축분장 관련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민원 사항에 대하여 빠짐없이 민원인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신속하게 하지 못하였다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의식적으로 관련 업무를 방임하거나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한다"고 밝혔다. A의 후임자도 민원인에게 정식으로 서면으로 민원을 접수하도록 하고 이 민원인의 민원요청서가 2018년 3월 14일 접수되자 보름 뒤인 3월 29일 현장을 확인하였고, 보령시는 이에 따라 시정명령 등의 조치를 내린 뒤 건축법 위반 혐의로 B를 고발했다. B는 2018년 10월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2013도229 등)을 인용, "형법 제122조에서 정하는 직무유기죄에서 '직무를 유기한 때'란 공무원이 법령, 내규 등에 의한 추상적 성실의무를 태만히 하는 일체의 경우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며 "그리하여 일단 직무집행의 의사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직무집행의 내용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만으로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것은 아니고, 공무원이 태만 · 분망 또는 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나 형식적으로 또는 소홀히 직무를 수행한 탓으로 적절한 직무수행에 이르지 못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도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