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독일 특허침해소송에서의 전문가 증거조사
[리걸타임즈 칼럼] 독일 특허침해소송에서의 전문가 증거조사
  • 기사출고 2021.01.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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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철 변리사]
한국의 특허침해소송에서 특허권자가 침해사실 및 손해액을 용이하게 입증할 수 있도록 자료제출명령, 피고의 실시태양제시의무 등 여러 형태의 입법이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침해사실 및 손해액 관련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최근 소위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관한 특허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이들 개정안에 포함된 '전문가에 의한 증거조사'는 독일의 전문가 조사제도(inspection)와 닮아 있다. 따라서 2008년에 독일특허법에 입법되어 운용되고 있는 독일의 inspection 제도는 무엇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증거조사 시에는 통상적으로 특허권자의 충분한 권리행사에 관한 이익과 실시자의 영업비밀 보호 이익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데, 독일에서는 제3자인 전문가가 증거를 조사하도록 하여 신속 · 효율적인 증거수집이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추후 실시자에게 영업비밀에 관한 방어기회를 보장해 줌으로써 양자의 이익 균형을 이룬다는데 특징이 있다.
 
법적 근거
 
독일 특허법 제140c조는 특허침해의 충분한 가능성이 있고 침해 확인에 필수적인 경우 증거조사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며(동조 제1항), 가처분 절차에 의해 실시자에게 수용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동조 제3항). 또한 독일 민사소송법 제485조는 증거가 손실될 위험이 있는 등의 경우 전문가가 증거조사를 할 수 있는 제도(독립증거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실무에서는 이들 제도를 접목한 형태의 전문가 증거조사가 주로 사용되고 있고, 이를 소위 '뒤셀도르프 절차'라고도 칭한다.
 
주요 요건 및 대상
 
독일 전문가 증거조사의 주요 요건은 ①특허침해의 가능성이 충분할 것과 ②이 외에 다른 합리적 증거확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왼쪽부터 황의철 변리사 · 마틴 카거바워(Martin Kagerbauer) 외국변호사 · 에바 메츠거(Eva Metzger) 외국변리사
◇왼쪽부터 황의철 변리사 · 마틴 카거바워(Martin Kagerbauer) 외국변호사 · 에바 메츠거(Eva Metzger) 외국변리사

먼저 ①요건에 대해서는, 단순한 의심만으로 찔러보기 식으로 신청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침해에 관한 구체적인 정황(concrete indications)을 보일 것이 요구된다. 법원은 사안별로 유연하게 판단하므로 어느 정도로 높은 가능성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으나, 법원이 inspection을 거부할 경우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권리를 행사할 기회가 박탈되는 결과가 되므로, 법원은 대체로 관대한 입장을 취하려고 한다. 독일연방대법원(BGH)도 inspection을 통해 입증하려는 사실에 대해 단지 소정의 가능성을 요구한다고 판시한바 있다. 예컨대 침해자의 특허, 매뉴얼 또는 광고 등을 통해 청구항 구성의 대부분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경우라면 충분하다고 판단될 수 있다.

또한 이 국면에서 특허의 유효성도 고려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특허의 유효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지만, 본안소송 전에 inspection을 신청하는 경우 침해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inspection 허가가 내려질 수 있으므로 특허권자는 먼저 특허의 유효성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야 한다.

②요건과 관련하여, 신청인은 왜 inspection을 신청하는지 그리고 다른 증거수집방법에 비해 왜 더 효과적인지 설명이 필요하다. 이미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다른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설명하면 도움이 된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이 요건을 매우 엄격히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사 대상물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경우 또는 광고내용을 통해서도 침해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경우라면 ②요건은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절차 및 조사 대상물

Inspection은 특허침해 본안소송 전 또는 도중에 가능하지만, 효과적인 증거수집을 위해서는 소송 전에 함으로써 침해자가 대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권장된다(surprising effect). 절차적으로 2단계로 나누어서 진행되는데, 첫 번째 단계는 현장 조사이고, 두 번째 단계는 전문가 보고서 작성 및 그 공개에 관한 것이다.

1단계: 특허권자는 지방법원(본안소송의 관할을 가진 곳)에 inspection 신청을 할 수 있다. 법원은 신속하게 신청을 검토하고 단 며칠 내로 inspection을 허가할 수 있고, 허가 후에는 즉시 실행 가능하다. 이때 통상 실시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진행된다. 증거조사는 법원에서 지정한 전문가(통상 변리사)에 의해 진행되며 법원의 집행관이 보조하게 된다. 이때 실시자의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특허권자는 현장에 참석할 수 없으나, 특허권자의 대리인은 전문가를 보조하는 정도로 참여할 수 있다. 전문가 및 특허권자 대리인은 이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또한 침해자가 현장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는지가 문제되는데, 실무상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지만, 필수적인 기계장치를 작동하게 한다든지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것은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증거조사의 대상은 장치, 공정, 물질, 관련 문서(도면, 설치 설명서 등)가 포함되며, 조사 행위는 원칙적으로 침해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포함한다. 예컨대 크기 · 무게 측정, 공정 실행, 컴퓨터 파일의 다운로드 등이 가능하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증거를 법원으로 가지고 가는 것도 가능하다. 전문가가 행하는 행위는 법원의 inspection 결정문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허권자는 inspection 신청시부터 증거의 대상 및 방법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특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실시자가 inspection을 거부하고 공장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 경우 특허권자는 구법원(區法院, Amtsgericht)에 별도로 신청하여 수색명령을 허가받아 집행관이 경찰관을 대동함으로써 강제 수색을 할 수 있고, 또한 실시자에게 25만 유로 이하의 과태료 또는 감치가 부과될 수도 있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입법안(이수진 의원 안)의 경우 전문가 조사를 거부할 경우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2단계: 전문가는 inspection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한다. 전문가 보고서는 먼저 실시자에게 송달되고, 실시자는 특히 영업비밀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준비할 수 있다. 법원은 구두변론을 통해 실시자의 의견을 들은 후에 영업비밀 보호 이익을 고려하여 보고서를 공개할지 여부 및 그 공개 범위를 결정한다. 영업비밀 보호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특허권자의 대리인에게만 공개될 수도 있고, 보고서의 일부 문구를 지우고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통계 및 프랑스 증거압류제도와의 비교

독일 침해소송에서 이러한 inspection이 얼마나 활용되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는 것으로 보이나, 대략 매년 수십 건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참고로 독일 특허침해소송은 연간 대략 1,000건 정도로 추정된다). 프랑스의 증거압류제도(Saisie-Contrefaçon)가 전체 침해소송의 80% 이상에서 활용되는 것에 비하면 독일의 inspection제도는 활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긴 하다. 프랑스의 Saisie-Contrefaçon은 상대방에 사전경고 없이 침해 증거물을 압류하는 제도로 본안소송 전에도 가능하다. 이 경우 특허 침해에 대한 합리적 가능성이 있어야 함을 요구하지만 그 입증 정도가 높지 않다(실무상 독일의 inspection에 비해 요건은 덜 엄격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 inspection은 제조공정 확인이 필요한 기계 또는 화학 분야에서는 활용도가 높고, 또한 외국기업 중 자국에서 이러한 제도가 없는 경우 독일에서 inspection을 신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실무상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황의철 변리사 · 마틴 카거바워(Martin Kagerbauer) 외국변호사 · 에바 메츠거(Eva Metzger) 외국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echwang@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