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 "재고도서 · 출판권 넘긴 뒤 같은 서비스표 등록 무효"
[지재] "재고도서 · 출판권 넘긴 뒤 같은 서비스표 등록 무효"
  • 기사출고 2020.12.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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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신의칙 위반"

차용금 변제를 위해 운영하던 출판사의 재고도서와 출판권 등을 넘긴 뒤 운영하던 출판사와 같은 이름의 서비스표를 등록한 것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본 것이다.

A출판사를 운영하던 김 모씨는, 교육서적 전문 B출판사를 운영하는 류 모씨에 대한 5억원의 차용금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2012년 11월 류씨에게 A출판사의 재고도서와 그 출판권 등의 자산을 양도하되 A출판사와 관련된 모든 채무는 인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내용의 사업양도계약을 체결하고, A출판사를 폐업했다. 양도계약에서 두 사람은 3억 5,000만원의 양도대금은 류씨의 김씨에 대한 대여금 채권과 상계하고, 김씨와 거래 중인 모든 거래처는 류씨가 인수하기로 정했다. 류씨는 이후 'A'라는 상호로 종전에 A출판사에서 출판하던 도서들을 출판, 판매하고, 양도계약을 전후하여 종래 A출판사에서 근무하던 11명의 직원들 중 6명을 자신이 운영하는 B사에 채용하여 'A'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2013년 1월 무렵에는 'A 대표' 명의로 A출판사가 보유하였던 출판권에 관하여 출판권자들과 새롭게 출판권설정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류씨의 아들은 2015년 1월 'A' 사업장과 같은 주소지를 사업장 소재지로 하여 'A출판'이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두 달 뒤인 3월 아버지 류씨로부터 'A' 사업장의 모든 권리와 자산과 부채를 포괄적으로 양수한 다음, 'A출판'이라는 상호로 종전에 A출판사에서 출판하던 도서들을 현재까지 출판,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김씨가 2013년 2월 무렵 인터넷에 '도서출판 A'라는 명칭을 사용한 직원채용공고를 게시하고, 2015년 2월 'A' 서비스표를 출원해 그해 12월 등록을 받자 류씨의 아들이 김씨를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등록상표에 대한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특허법원에서도 "(김씨와 류씨가 맺은) 양도계약이 영업양도계약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류씨의 아들이 상고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그러나 11월 5일 "피고의 등록서비스표 등록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어 무효"라며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2020후10827). 구 상표법 7조 1항 18호는 "동업 · 고용 등 계약관계나 업무상 거래관계 또는 그 밖의 관계를 통하여 타인이 사용하거나 사용을 준비 중인 상표임을 알면서 그 상표와 동일 · 유사한 상표를 동일 · 유사한 상품에 등록출원한 상표에 대해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엘케이비앤파트너스가 특허법원과 상고심에서 원고를 대리했다.

대법원은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8호의 취지는, 타인과의 계약관계 등을 통해 타인이 사용하거나 사용 준비 중인 상표(선사용상표)를 알게 된 사람이 타인에 대한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여 선사용상표와 동일 · 유사한 상표를 동일 · 유사한 상품에 등록출원한 경우 그 상표등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고 전제하고,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8호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타인과 출원인의 내부 관계, 계약이 체결된 경우 해당 계약의 구체적 내용, 선사용상표의 개발 · 선정 · 사용 경위, 선사용상표가 사용 중인 경우 그 사용을 통제하거나 선사용상표를 사용하는 상품의 성질 또는 품질을 관리하여 온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고, 이러한 법리는 서비스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와 류씨가 맺은) 양도계약은 피고의 재고도서와 출판권 및 기존 출판영업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주요 직원과 거래처를 류씨에게 이전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고, 피고와 류씨는 양도계약을 통하여 'A'라는 표장의 사용 권원을 류씨에게 귀속시키기로 합의하였으며, 이후 위 표장의 사용 권원은 최종적으로 류씨로부터 원고에게 이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따라 류씨 또는 원고는 'A' 또는 'A출판'이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A출판사에서 출판하던 도서들을 출판, 판매하는 등 자신의 서비스업 표지를 'A' 또는 'A출판'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대외적으로 표시하고 'A'라는 표장의 사용을 통제, 관리하여 왔으므로, 양도계약 이후 위 표장을 서비스표로서 사용한 주체도 류씨 또는 원고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가 양도계약 등을 통하여 'A'라는 표장의 사용 권원을 류씨에게 이전하고 류씨 또는 원고가 위 표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위 표장과 동일 · 유사한 서비스표를 동일 · 유사한 서비스에 출원하여 'A' 등록서비스표로 등록받은 것은, 류씨 또는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피고의 등록서비스표는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8호에 해당하여 무효라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