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왕실변호사 Hilary Heilbron 인터뷰
英 왕실변호사 Hilary Heilbron 인터뷰
  • 기사출고 2020.11.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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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에 굴하지 말고 능력 개발 계속하면
여성변호사에게 자연스럽게 기회 올 것"

대한상사중재원(KCAB)이 11월 2일부터 7일까지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병행해 진행한 2020 서울 ADR 페스티벌에 주목할 만한 여러 행사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Herbert Smith Freehills)가 11월 3일 공동개최한 '제3회 Women in Arbitration 웨비나'로, 김앤장의 서성진 뉴욕주 변호사와 Herbert Smith Freehills("HSF")의 Dana Kim 영국변호사가 진행과 사회를 맡은 이 웨비나에선 특히 영국의 유명 여성 중재인인 Hilary Heilbron QC(Queen's Counsel, 왕실변호사)에 대한 화상 인터뷰가 이루어져 많은 관심을 끌었다. 광장의 김선영 변호사, 커빙턴앤벌링(Covington & Burling LLP)의 정경화 변호사, 김앤장의 김혜성 변호사, 세종의 김자영 변호사도 패널로 참여하여 Hilary Heilbron QC와의 활발한 문답을 이어갔으며, HSF의 서울사무소 대표인 Mike McClure 변호사가 폐회사를 하였다.

제3회 'Women in Arbitration' 웨비나 인기

김앤장과 HSF의 여성변호사들이 주도하여 여성 기업인 및 사내변호사들을 초청하여 개최하고 있는 여성 중재인 세미나는 올해로 3회째. 임수현 사무총장은 개회사에서, "인구의 반을 이루는 여성 중재인의 경험과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고, 제한된 시야에 의한 중재 진행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고 중재 절차 및 결과에 있어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여성 중재인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KCAB 국제중재센터에서는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 중재인 후보 명단에 여성 중재인을 보다 더 많이 포함하여 왔고, 실제로 여성 중재인이 더 많이 임명되어 왔다는 통계를 공유하였다. 임 변호사는 최근 구성된 KCAB International Diversity & Inclusion Committee를 소개하면서 다양성 증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여 갈 예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11월 3일 개최된 '제3회 Women in Arbitration 웨비나'에서 영국의 유명 여성 중재인인 Hilary Heilbron QC와의 인터뷰가 성사되어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김앤장의 서성진 변호사가 Hilary Heilbron QC(좌)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11월 3일 개최된 '제3회 Women in Arbitration 웨비나'에서 영국의 유명 여성 중재인인 Hilary Heilbron QC와의 인터뷰가 성사되어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김앤장의 서성진 변호사가 Hilary Heilbron QC(좌)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앤장의 서성진 변호사는 이번 행사에서 인터뷰 대상이 된 Hilary Heilbron QC의 개인적 경험을 비롯해 그가 변호사가 된 계기와 변호를 맡았던 유명 사건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통해 Hilary Heilbron QC의 40여년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생각을 참여자들과 공유하였다. Hilary Heilbron QC는 100건이 넘는 국제중재 사건에서 중재인으로 활약하면서 국제중재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영국의 법정변호사로서 중재계의 주요 사건인 Dallah Real Estate Tourism Holding Co v Government of Pakistan [2010] UKSC 46 영국 대법원 사건 및 SulAmérica Cia Nacional de Seguros v Enesa Engenharia S.A. [2012] EWHC 42 상업법원 사건에서도 변론한 바 있다. 또 영국 최초의 여성 판사이자 왕실변호사였던 Dame Rose Heilbron QC의 유일한 딸로서 어머니에 대한 전기를 집필하였다.

첫 왕실변호사였던 어머니 전기 집필

서 변호사가 진행한 Hilary Heilbron과의 생생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어머니 Rose Heilbron 판사에 대한 소개부터 부탁한다.

"형사 절차에서 법정변호사로 법조계에 입문하였다. 다수의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도 워킹맘으로서 공적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당시는 TV도 없었던 시절이므로 유명한 형사재판의 진행 상황은 신문에서 널리 보도되고 대중에게도 큰 관심사였던 때이다. 어머니는 뛰어난 변호사였을 뿐 아니라 여성도 남성과 평등하게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여성의 권리 관련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왕실변호사에 이름을 올렸는데, 1960년 이후 여성 왕실변호사들이 임명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barrister가 된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아버지가 의사였는데, 나는 피를 무서워하여서 의사는 되지 못하였고, 대학교 때 solicitor(법정변호사가 아닌 사무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나는 변론을 하는 barrister(법정변호사)가 잘 맞겠다고 마음먹었다고 기억한다."

-어머니가 일하던 시절과 비교하였을 때 본인이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한 70년대 무렵에는 어떠한 개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성에 대한 편견 여전히 존재"

"생각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성은 높은 톤의 목소리 때문에 법정에서 변론하기 어렵다는 편견 등이 여전히 존재했고 여성변호사는 소수에 불과했으며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다. 내가 소속된 Brick Chambers에서 처음으로 법정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에도 Brick Chambers에서 10년간 여성은 나 혼자였고, QC가 된 여성도 내가 처음이었다."

-민사소송 전문 변호사로 시작하였는데 국제중재 전문가가 된 이유는?

"민사사건을 하면서 중재를 접하게 되었다. 판사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국제중재 사건이 늘어났다. 국제중재 사건을 수행하면서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법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유명한 사건인 Dallah Real Estate Tourism Holding Co v Government of Pakistan에서 영국 대법원에서 변론하였는데, (당시 영국 대법원은 Hilary Heilbron QC의 주장과 다른 판단을 함) 영국 대법원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시 영국 대법원은 프랑스법에서의 common intention의 개념을 해석하면서 중재판정부의 결정을 취소(set aside)하였으나, 후에 정작 프랑스 법원은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나는 프랑스법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프랑스 법원의 입장이 옳다고 보는데, 물론 상대방이었던 Toby Landau QC는 다르게 볼 것이다. 이렇게 관할마다 다른 판단이 있을 수 있는 것이 국제분쟁의 특징이기도 하다."

"관할마다 다른 판단 있을 수 있어"

-법정변호사로서 여러 관할에서 오는 변호사들과 일할 때, 특히 대륙법계 변호사와 일할 때 어려움은 없는가?

"유일한 코멘트는 가급적 조기에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외부 대리인을 선임하는 경우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조기에 사건에 참여하게 된다면 사건 준비를 위해서 보다 더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중재인으로서, 대리인이 피해야 할 3가지 사항을 꼽는다면?

"변호사가 중재인 앞에서 서면을 그대로 읽을 때, 길게 말하다가 핵심을 놓칠 때, 너무 당연한 사항을 반대신문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질문을 할 때, 가령 증인진술서를 (대부분 대리인이 써주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쓴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이 쓴 문서의 의미를 물어보거나 계약의 의미를 물어보는 것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어 광장의 김선영 변호사, 커빙턴앤벌링의 정경화 변호사, 김앤장의 김혜성 변호사, 세종의 김자영 변호사가 패널로 참여하여 진행된 질문과 답변을 이어갔다.

-한국에서 여성변호사가 많이 늘어나기는 하였으나, 40~50대가 된 여성변호사가 리더로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견들이 있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경험하였는가, 또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특정 지위에 오르지 못할 때 이를 느끼게 된다. 여성들이 배제되더라도, 부적절한 의견을 듣는다 하더라도 다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여성의 수가 늘어나면 남성 중심적인 인식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편견이 있더라도 이에 굴하지 말고 계속 목소리를 내서 자신답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런던 변호사들이 특정 수의 여성을 중재인으로 임명하기로 약속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일정한 비율 또는 수의 여성을 임명하기로 하는 것이 양성 평등에 기여한다고 보는가?

"일정 기준 두고 임명 바람직"

"비율을 기준으로 하면 해당 직무에 적절하지 못한 사람을 선출하게 될 수 있으므로, 일정한 기준을 두고 해당 직무에 적합한 여성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의장중재인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는지 자주 질문을 받는데, 이런 질문 자체가 스테레오 타입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여성들이 의장을 많이 할수록 이러한 편견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때로는 여성이 여성을 경쟁자로 생각해서 돕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여성들이 서로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다. 5년의 경험만 있다고 하면서 외과의사를 할 수 없듯이, 짧은 경험으로 중재인을 할 수는 없으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 중재인들 둘이 있을 때, 여성이 의장중재인을 하면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보다 많은 여성 중재인을 선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의하는가?

"여하간의 이유로 여성 중재인을 원한다면 굳이 그 이유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고, 다음 번에는 여성의 역할이 아닌 실력으로 임명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 경력을 보유하는 것이 여성 중재 변호사로서 장점이 될 수 있는가?

"중재 변호사라면 중재 절차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여러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국제중재 변호사로 성장하는데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도 영국법이 아닌 외국법 중재를 할 때도 많지만, 이는 비즈니스 측면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성으로서 중재인이 되기 위해 좋은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중재인에 적합한 자질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중재인 또는 여성변호사에게 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많이 참여하고, 글을 많이 쓰고 해서 자신을 계속 알렸으면 한다. 중재인으로 선임되지 못한 것이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 수 있으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노력했으면 좋겠다. 계속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도 많은 변화를 목도하였는데, 변화는 수 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올 것으로 믿고 있다."

서성진 변호사는, 앞으로도 여성들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서로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였다.

폐회사에서 Mike McClure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였음에도 주요 로펌에 능력 있는 여성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KCAB의 Diversity & Inclusion Committee가 향후 다양성을 실현하는 견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웨비나를 마무리하였다.

Hilary Heilbron QC에 대한 인터뷰와 여성 중재변호사들에 의한 활발한 토론은, 보수적인 영국의 법조 사회에서 1940년경부터 비로소 여성 법조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역사의 현장에서 활동하여 온 법정변호사의 경험을 공유하고 우리 여성 중재변호사들에게 하나의 롤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더구나 김앤장을 비롯한 주요 로펌의 국제중재팀에 여성변호사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가고 있어, 앞으로도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어 한층 주목을 끈 행사였다.

1952년 첫 여성 판사 탄생

한국에서는 1952년 최초의 여성변호사였던 이태영 변호사, 1954년 황윤석 판사를 시작으로 1973년 3인, 1985년 3인의 여성 법관, 2004년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배출되어 보수적인 사법부에도 여성 법조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Hilary Heilbron QC의 믿음과 같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여성변호사들이 법조계 특히 국제중재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활약하여 여성의 능력과 다양성이 더욱 빛나고 꽃을 피우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서성진 뉴욕주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sjseo@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