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로프 안 잡아 실내 인공암벽 등반자 추락케 한 빌레이어, 과실치상 유죄
[형사] 로프 안 잡아 실내 인공암벽 등반자 추락케 한 빌레이어, 과실치상 유죄
  • 기사출고 2020.11.0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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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지법] "피해자 승낙 인정 곤란"

서울북부지법 홍주현 판사는 10월 30일 실내 인공암벽장에서 암벽등반자의 추락을 멈추게 하는 '빌레이어(belayer)' 역할을 하다가 로프를 제대로 잡지 않아 약 12m 높이에서 등반자를 떨어지게 한 이 모(66)씨에게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2019고단3870).

2018년 9월 22일 오후 2시 50분쯤 서울 성동구에 있는 인공암벽장에서 A(당시 47세)씨에 대한 빌레이어 역할을 수행하게 된 이씨는, A씨가 추락할 때 그리그리(gri-gri)와 연결된 A씨 반대쪽 로프를 손으로 잡지 않고 있다가 그리그리가 로프를 제대로 제동하지 못하게 하여 A씨가 약 12m 높이의 인공암벽에서 바닥까지 그대로 추락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이 사고로 전치 약 12주의 요추 파열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그리그리는 자동 잠금 확보기구의 한 종류로 로프를 천천히 잡아당기면 그리그리를 빠져나오지만 로프를 갑자기 잡아당기면 내부의 캠이 돌며 로프를 꽉 물어 자동으로 로프를 제동하게 하는 장치다.

이씨와 변호인은 재판에서 "빌레이어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리그리와 연결된 피해자 반대쪽 로프를 손으로 잡고 있지 않았던 사실은 없다"며 "피해자 추락의 책임을 묻는 것은 행위책임이 아닌 결과책임을 부담하라는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홍 판사는 그러나 "피고인은 사건 당시 피해자가 암벽 등반 과정에서 추락하지 않도록 로프를 잡고 조절하는 '빌레이어' 역할을 수행하였고, 빌레이어는 왼손으로는 등반자에게 연결된 로프를, 오른손으로는 그리그리에 연결된 등반자의 반대쪽 로프를 잡고 지면을 향하게 함으로써 등반자의 추락사고를 방지하는데, 그리그리는 자동차의 좌석 안전벨트와 같은 작동원리를 가지고 있어 빌레이어가 로프를 풀거나 당겨줄 때에는 로프가 순조롭게 빠져나가지만, 등반자의 추락으로 로프가 갑자기 빠져나가면 내부의 캠이 작동해 자동적으로 로프를 눌러 잠그는 제동력을 만들어 주는 자동 잠금 확보기구이므로, 등반자가 갑자기 하강하게 되는 경우에도 빌레이어가 그리그리의 레버를 열지 않는다면 그리그리가 로프를 자동으로 제동하여 등반자가 땅에 추락하게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피고인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상해를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홍 판사는 "피고인은 암벽등반에 관하여 초보자 내지 초중급자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으로 돌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보이나, 암벽등반에 관한 기본적 지식이나 빌레이어 역할을 한 경험은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피고인이 오른손으로 그리그리에 연결된 등반자의 반대쪽 로프를 제대로 잡지 않는 경우 피해자가 추락하여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빌레이어는 갑작스런 등반자의 추락에 대비하여 안전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피고인이 피해자보다 암벽등반 경력이 짧다는 이유만으로는 사고에 대한 회피가능성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씨와 변호인은 또 "설령 피고인이 주의의무 위반이 있는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베테랑인 피해자가 초급 아마추어인 피고인에게 목숨이 달린 빌레이어 역할을 맡겼다는 것은 상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홍 판사는 그러나 "피해자의 승낙으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피해의 범위는 실내 암벽등반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실외 암벽등반에 내재된 위험 상황 등에 한정되는 것이지, 갑작스런 등반자의 추락에 대비하여 안전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빌레이어가 그리그리 조작 및 로프 조절을 미숙하게 한 과실로 발생한 추락으로 인한 상해에 대한 것까지 포함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 판사는 "암벽등반은 그 특성상 추락의 위험성이 항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도 그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감수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해자에게도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이 인정된다"고 지적하고, "피고인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기는 하나, 피고인과 피해자는 각자의 기량에 따라 자율적으로 등반을 즐기기 위해 결성된 친목회적 성격의 모임에서 알게 된 관계로서 피해자가 자신에 비하여 경력이 짧은 것을 알고도 피고인에게 빌레이어 역할을 부탁하였던 점 등 그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