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저당권 설정한 버스 제3자에게 처분했어도 배임죄 아니야"
[형사] "저당권 설정한 버스 제3자에게 처분했어도 배임죄 아니야"
  • 기사출고 2020.11.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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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원합의체] "버스 매매 중도금 받은 후 근저당권 설정도 무죄"

버스 구입자금을 대출받으면서 버스에 저당권을 설정해준 뒤 해당 버스를 다른 사람에게 처분했어도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또 버스를 매도하기로 해 계약금에이어 중도금까지 받고도 제3자에게 공동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더라도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두 경우 모두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0월 22일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관광버스 지입회사를 운영하는 이 모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6258)에서 이같이 판시,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다른 혐의 등과 함께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배임 혐의는 무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이씨는 메리츠캐피탈로부터 버스 2대의 구입자금을 대출받으면서 각 버스에 저당권을 설정해준 뒤 이들 버스를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A씨에게 2대의 버스 중 1대를 3,600만원에 매도하기로 하고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지급받은 뒤 이 버스에 관하여  새마을금고에 공동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준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대법원은 먼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 · 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채무자의 담보물에 대한 담보가치 유지 · 보전 의무는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 이루어지는 이익대립 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위와 같은 법리는 금전채무에 대한 담보로 「공장 및 광업재단 저당법」에 따라 저당권이 설정된 동산을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와 달리 채무 담보를 위하여 채권자에게 동산에 관하여 저당권 또는 공장저당권을 설정한 채무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한 종전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 "피해자에 대한 채무 담보를 목적으로 위 각 버스에 관하여 저당권을 설정하였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피해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위 각 버스를 처분하였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A씨에 대한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매매와 같이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계약의 경우(민법 563조), 쌍방이 그 계약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여야 할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사무'에 해당하는 것이 원칙이고, 동산 매매계약에서의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매도인이 목적물을 타에 처분하였다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전제하고, "위와 같은 법리는 권리이전에 등기 · 등록을 요하는 동산에 대한 매매계약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자동차 등의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록을 하지 아니하고 타에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하여 위 버스에 관한 소유권이전등록의무를 지고 있더라도 그러한 의무는 위 매매계약에 따른 피고인 자신의 사무일 뿐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피해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어,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위 버스에 공동근저당권을 설정하였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타인의 사무에 관한 해석을 통해 형벌법규의 엄격해석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사법(私法)의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사적 자치의 침해를 방지한다는 데 이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