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카지노에서 1,000만원, 100만원권 자기앞수표 받고 칩 교환…수표금 거절 정당"
[민사] "카지노에서 1,000만원, 100만원권 자기앞수표 받고 칩 교환…수표금 거절 정당"
  • 기사출고 2020.10.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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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중대한 과실 있어…선의취득 아니야"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보이스피싱범이 편취한 1,000만원권, 10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칩으로 교환해 준 경우 은행에서 이들 수표에 대한 수표금을 받을 수 있을까? .

서울중앙지법 김상근 판사는 8월 18일 호텔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보이스피싱범에게서 받은 1,000만원권과 100만원권 수표금 5,500만원을 지급하라"며 국민은행과 중소기업은행을 상대로 낸 수표금 청구소송(2020가단5000004)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카지노에 중대한 과실이 있어 수표를 선의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9년 11월 6일 말레이시아 국적의 보이스피싱범과 공모하여 피해자 2명으로부터 100만원권 자기앞수표 25장과 1,000만원권 자기앞수표 3장, 현금 2,500만원을 편취한 중국 국적의 보이스피싱범 A는, 이날 오후 2시 36분쯤 GKL이 운영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방문하여 바카라 테이블에서 1,000만원권 자기앞수표 3장을 제시하여 칩으로 교환하고, 오후 3시 4분쯤 다른 바카라 테이블로 옮겨 자기앞수표 100만원권 25장을 제시하여 칩으로 교환하여 소액의 게임을 한 다음 승패와 현금화 없이 칩을 가지고 퇴장한 후 다시 이 카지노를 방문하지 않았다. GKL은 고객이 자기앞수표를 제시하여 칩으로 교환요청하는 경우 금융결제원 데이터조회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기앞수표에 대한 사고수표 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며, A씨가 제시한 수표에 대하여도 사고수표 여부를 확인했으나 A가 수표를 제시할 당시에는 아직 사고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정상으로 조회되었다. 그러나 이들 수표의 지급제시기간 내인 2019년 11월 8일 GKL이 A로부터 받은 수표를 국민은행과 중소기업은행에 지급제시했으나, 피해자들의 사고신고를 이유로 수표금 지급이 거절되자 이들 수표를 선의취득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GKL이 운영하는 카지노는 영업장이 3군데 있는데, 각 영업장의 칩은 형태가 조금씩 다르나 반출과 반입이 자유롭고 어느 한 영업장의 칩은 다른 영업장에서도 사용과 현금화가 가능하므로,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편취한 자기앞수표에 대한 사고신고가 접수되기 전에 이를 칩으로 교환하여 영업장 밖으로 반출시키면 다른 공범이 그 칩을 들고 3개 영업장 중 어느 한 곳에 가지고 가서 현금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김 판사는 대법원 판결(2005다27287 등)을 인용, "수표법 제21조는 '사유의 여하를 불문하고 수표의 점유를 잃은 자가 있는 경우에 그 수표의 소지인은 그 수표가 소지인출급식일 때 또는 배서로 양도할 수 있는 수표의 소지인이 제19조의 규정에 의하여 그 권리를 증명한 때에는 그 수표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소지인이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수표를 취득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자기앞수표 등을 취득하면서 통상적인 거래기준으로 판단하여 볼 때 양도인이나 그 자기앞수표 자체 등에 의하여 양도인의 실질적 무권리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될 만한 조사를 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그 자기앞수표 등을 양수한 경우에는 양수인에게 수표법 제21조 단서에서 말하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원고가 이 사건 수표들을 취득할 당시 그 제시자인 중국인 A의 실질적 무권리성을 의심하게 할 만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될 만한 조사를 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그 자기앞수표 등을 양수한 것으로서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원고는 이 사건 수표들을 선의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기본적으로 카지노에 출입하는 외국인이 자기앞수표를 칩으로 교환요청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사고수표 조회를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아니 되고, 차후 해당 수표가 결제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제시자의 인적사항, 국내 거주 여부, 연락처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에서도 원고는 외국인을 상대로 카지노 영업을 하는 회사로서, 회원가입신청서에 회원의 성명, 국적, 생년월일, 여권번호, 주소(국내 거주 여부), 직업 등의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기재하도록 하는 외에 게임 자금의 출처를 기재하도록 하여 불법적인 자금이 유입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고, 전산시스템에 위와 같은 회원의 기본적인 인적사항뿐 아니라 회원의 영업장 방문 내역, 게임 내역, 드롭 내역, 칩인 내역, 칩아웃 내역, 칩의 현금화 내역 등도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원고는 이 사건 수표들을 가지고 와서 칩으로 교환하거나 현금화 작업을 한 A가 중국 길림성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국적의 국내 비거주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락 목적으로 카지노에 내장한 비거주 외국인이 바로 전날 18:10경 1,000만원 분량의 칩을 소지하고 퇴장하였음에도 다음날 14:36경 다시 방문하여 전날 가지고 간 칩은 사용하지 않고 추가로 5,500만원에 이르는 당일자 자기앞수표를 2회로 나누어 칩으로 교환한 다음 게임은 소극적으로 하면서 승패 없이 5,500만원에 이르는 칩을 그대로 가지고 퇴장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의심스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며 "특히 11. 6. 칩으로 교환한 총 5,500만원에 이르는 이 사건 수표들은 발행은행과 액면금이 전혀 다른 2종류(피고 국민은행 발행 자기앞수표는 100만원권 25매, 피고 중소기업은행 발행 자기앞수표는 1,000만원권 3매)이고, 발행은행의 위치도 미아동지점과 홍은동지점으로 동떨어져 있었는바, 국내에서는 대금결제 및 송금의 방법으로는 전자금융거래가 일반화되어 있어 상거래와 관련하여 자기앞수표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미 예외적인 상황이 되었으며, 결제수단으로 자기앞수표를 취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5,5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을 은행과 액면금, 발행은행의 위치가 전혀 다른 2종류로 구성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어서, 이 사건 수표들의 발행 및 구성내역을 보아도 이 사건 수표들이 정상적인 상거래를 통하여 취득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고 밝혔다. A는 2019년 11월 2일 이 카지노에 처음 입장하여 작성한 회원가입신청서에 카지노 회원가입 목적을 오락으로 기재하고 자금출처는 '근로및연금소득'이라고 기재하였는데, 회원 가입을 한 첫 방문날에는 350,000원 정도의 소액의 게임을 한 다음 퇴장하였고, 이 카지노를 출입한 경력이 없는데도 GKL의 영업장에서 사용되는 칩을 이미 가지고 입장하여 칩인(chip in ·고객 본인이 가지고 있던 게임칩을 게임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을 하였고, 그 다음날인 11월 3일에는 오전 11시 26분부터 오후 10시 40분까지 5회에 걸쳐 입장 및 퇴장을 반복하며 11월 4일 오전 0시 32분까지 머물렀음에도 총 530,000원 정도만을 사용하여 소액으로 게임을 하였다.

김 판사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 본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은 국내에 공지된 사실이며, 피해자로부터 편취한 금품이 자기앞수표인 경우 범인들이 카지노를 이용하여 환전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선험적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카지노 사업자들로서는 카지노가 더 이상 보이스피싱 범죄의 결과물인 자기앞수표가 현금화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조록 통상적인 자기앞수표의 거래에 있어 요구되는 주의의무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