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9년 만에 종교 활동 재개하며 입영 거부…양심적 병역거부 아니야"
[형사] "9년 만에 종교 활동 재개하며 입영 거부…양심적 병역거부 아니야"
  • 기사출고 2020.09.2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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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종교적 신념 깊거나 확고하다고 볼 수 없어"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9년 만에 종교 활동을 재개하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9월 3일 현역입영 통지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8055)에서 A씨의 상고를 기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7월 10일 부천시 소사로에 있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아버지를 통해 '2018년 8월 13일 강원 홍천군에 위치한 11사단에 입영하라'는 인천병무지청장 명의의 현역 입영통지서를 수령하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소집일로부터 3일이 경과한 2018년 8월 16일경까지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것이므로, 피고인에게는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유죄를 선고하자 상고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06년 8월 침례를 받아 정식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었으나 2009년 6월경부터 종교 활동을 중단했다. A씨는 2012년 10월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선정되자 2017년 12월까지 추후 입영예정임을 전제로 중고등학교 복학 예정, 자격시험 응시, 자기계발 등을 이유로 입영연기를 신청했으나,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등의 사유를 제시하며 연기신청을 하거나 병역거부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는 않았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2018년 6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는 병역종류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2011헌바379 등)을 하자, 종교 활동을 중단한지 9년 만인 2018년 9월경부터 다시 성서연구를 시작하면서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종교 활동을 재개했다. A씨는 검찰에서 입영 직전만 해도 정상적으로 군에 입대해 복무할 생각이었으나, 입영 바로 전날인 2018년 8월 12일에야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입영을 거부한 후 종교 활동을 재개하였다고 진술했다.

대법원은 "제1심은 이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병역거부 당시 피고인의 종교적 신념이 깊거나 확고하다고 볼 수 없고,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며, 원심은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며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그 양심이 과연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사물의 성질상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예컨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주장에 대해서는 종교의 구체적 교리가 어떠한지, 그 교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명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 종교가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이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오로지 또는 주로 그 교리에 따른 것인지, 피고인이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와 경위, 만일 피고인이 개종을 한 것이라면 그 이유와 경위,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등이 주요한 판단요소가 될 것이다.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과 동일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실형을 선고 받아 복역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는 등의 사정은 적극적인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위와 같은 판단 과정에서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통하여 형성되고, 또한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의 실제 삶으로 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A씨가 2008년경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 특수절도 등 사건으로 소년보호 처분을, 2014년 자동차 허위 매물과 관련된 자동차관리법 위반 사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2015년경 범인도피죄, 자동차관리법 위반죄로 벌금형을, 2018년경 사기죄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고, 그 밖에도 무면허운전과 음주운전으로 7차례에 걸쳐 입건되어 처벌을 받은 전력도 있으며, 이러한 점도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 여부를 판단하는 데 참작 사유가 되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