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컴퓨터 본체 하드카피 압수 원칙적 위법"
[형사] "컴퓨터 본체 하드카피 압수 원칙적 위법"
  • 기사출고 2020.09.0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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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혐의 관련 부분만 문서 출력 또는 복사해야"

대기업의 화학제품 제조공정 기술을 빼돌려 해외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실형과 집행유예 등을 받은 중소기업 대표와 대기업 전 임직원 등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인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포렌식 수사가 늘어나는 가운데 재판부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절차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제시한 것이어 주목된다.

울산지법 형사1부(재판장 이우철 부장판사)는 8월 13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중소기업 P사 대표 박 모(67)씨와 대기업의 전 임직원인 김 모(61), 조 모(69)씨, P사 직원 이 모(59)씨 등 4명과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된 P사에 대한 항소심(2019노138)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각 공소사실의 핵심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압수물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증거로 삼을 수 없고, 위법수집증거인 압수물을 기초로 하여 수집된 2차적 증거들 역시 증거능력이 없어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무죄 부분의 요지를 공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판결문에서 영장 사본에 의한 압수수색, 피압수자 측의 참여 기회를 배제한 압수수색 등 유형별로 압수수색의 위법 여부에 대한 상세한 판단을 제시해 주목된다.

재판부는 먼저 영장 사본에 의한 압수수색과 관련, "압수수색 영장의 제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본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전제하고, "수사기관이 P사 울산사무실에서 압수목록 순번 99 내지 125의 물건들을 압수한 조치뿐만 아니라, 서울사무실에서 압수목록 순번 1 내지 98, 126의 물건들을 압수한 조치 역시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절차를 위반한 위법한 압수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P사의 서울사무실과 울산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2014. 3. 11.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여러 곳을 압수수색하는 경우라도 1통의 압수수색영장만 발부받아 사본하여 집행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볼 객관적인 자료가 없고, 설령 그러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정당화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경찰관은 자신이 영장 원본을 가지고 P사 서울사무실 압수수색을 직접 집행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고, 서울사무실 관련 압수조서에도 이 경찰관이 압수수색을 집행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기는 하나 서울사무실에서 압수한 물건이 울산사무실 관련 압수조서에 기재되어 있는 등 압수조서의 진정성,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정황이 발견된 이상, 경찰관의 진술만으로 서울사무실에서는 압수수색영장 원본이, 울산사무실에서는 그 사본이 각 제시되어 집행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객관적 자료의 뒷받침 없이 압수수색 처리자의 진술에 따라 압수수색영장 원본과 사본의 집행을 쉽게 구분하여 인정해 버리면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공소사실 입증에 보다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증거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셈이 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영장 발부의 사유로 된 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만을 문서 출력물로 수집하거나 수사기관이 휴대한 저장매체에 해당 파일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집행현장의 사정상 위와 같은 방식에 의한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부득이한 사정이 존재하더라도 그와 같은 경우에 그 저장매체 자체를 직접 혹은 복제본 형태로 수사기관 사무실 등 외부로 반출하여 해당 파일을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영장에 기재되어 있고 실제 그와 같은 사정이 발생한 때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대법원 2009모1190 결정 등 참조)"이라고 지적하고, "이 사건 각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할 당시 수사기관은 한 사무실에서의 집행을 제외하고는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로 범위를 특정하여 문서로 출력하거나 휴대한 저장매체에 복제하는 등의 원칙적 방법으로 전자정보를 압수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압수수색영장의 집행 처리자인 경찰관의 진술을 제외하고는 집행현장의 사정상 위와 같이 제한된 방식에 의한 원칙적인 전자정보의 압수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부득이한 사정이 실제로 발생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전자정보를 압수하면서 각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압수 대상 및 방법의 제한을 위반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와 같은 수사기관의 증거수집 절차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황 모씨로부터 컴퓨터 본체 1대 및 노트북 2대를 하드카피하여 압수하고, 외장형 하드디스크 1대, USB 2개 등을 압수했다. 또 피고인 박씨로부터 컴퓨터 1대를 하드카피하여 압수했다.

다음은 피압수자 측의 참여 기회를 배제한 압수수색의 위법 여부.

재판부는 2015. 7. 16.자 2011모1839 전원합의체 결정을 인용해, "저장매체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범위를 정하여 출력 또는 복제하는 방법이 불가능하거나 압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현저히 곤란한 예외적인 사정이 인정되어 전자정보가 담긴 저장매체 또는 복제본을 수사기관 사무실 등으로 옮겨 이를 복제 · 탐색 · 출력하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형사소송법 제219조, 제121조에서 규정하는 피압수자나 그 변호인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고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의 임의적인 복제 등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등 영장주의 원칙과 적법절차를 준수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만약 그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 피압수자 측이 참여하지 아니한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였거나 절차 위반행위가 이루어진 과정의 성질과 내용 등에 비추어 피압수자 측에 절차 참여를 보장한 취지가 실질적으로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에 해당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압수수색이 적법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런데 "경찰관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수사기관이 피고인 박씨 등으로부터 압수한 저장매체 또는 복제본을 울산지방경찰청 사무실에 옮겨놓은 이후 이를 다시 복제 · 탐색 · 출력하는 과정에서 피압수자 측에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며 "수사기관은 이 사건 각 압수수색영장의 집행 과정, 특히 압수한 저장매체 또는 복제본을 다시 복제 · 탐색 · 출력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박씨 등 피압수자 측의 참여 기회를 배제하여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수사기관은 피고인 박씨의 피해자인 A케미칼에 대한 범행에 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영장 발부의 사유로 된 범죄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하였을 경우 이는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씨에 대한 각 압수수색영장의 범죄 혐의사실에 피고인 박씨와의 공모관계가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가 A케미칼이고 범행 내용도 과산화수소 제조공정 기술 유출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황씨의 이메일을 통해 포착된 피고인 박씨의 범행은 위 각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고, 한편 피고인 박씨는 A케미칼에 대한 범행에 있어 황씨와 공동정범 관계에 있으므로, 인적 관련성도 인정된다"며 "결국 수사기관이 황씨에 대한 각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박씨 등은 한 대기업의 폴리옥시메틸렌(POM) 제조공정 관련 주요 도면 등을 빼돌리고, 이를 P사의 기술인 것처럼 가장하여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이나 이란 등의 업체에 유출하거나 유출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실제 중국 업체와 3회에 걸쳐 225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이 중 148억여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또 다른 회사인 A케미칼의 과산화수소 생산 관련 설비의 도면파일 등 17개 파일을 A케미칼 전 직원과 공모하여 빼돌려 그중 일부를 사용한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