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에너지 전환과 수소경제
[리걸타임즈 칼럼] 에너지 전환과 수소경제
  • 기사출고 2020.09.0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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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헬, 리, 베, 붕, 탄, 질, 산, 플, 네, 나, 마, 알, 규, 인, 황, 염, 아, 칼, 칼"

고등학교 때 외웠던 원소주기율표 1번부터 20번까지 원소들의 첫 글자다(우리가 좋아하는 두문자!). 신기하게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입 밖으로 나온다. 두문자만 기억나는 것들도 많지만 말이다. 이중 가장 먼저 나오는 '수', 즉 수소에 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수소법 내년 2월 시행 예정

수소경제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아직은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 주변에서 수소차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수소에 관한 관심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차량생산 실적이 전무한 니콜라라는 수소트럭 업체가 장중 한때지만 증시 상장 후 4거래일 만에 포드의 시가총액을 넘기도 했다. 유럽은 더욱 적극적이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유럽 수소로드맵(Hydrogen Roadmap Europe)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시스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작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국회는 올 2월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을 제정하여 내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우리 수소법은 수소경제에 관한 사항을 법제화한 세계 최초의 사례이다.

◇김판수 변호사
◇김판수 변호사

수소는 그 자체로 에너지원 또는 원료로 이용될 수도 있지만, 최근의 많은 관심은 수소를 이용한 전기 생산에 있다. 고등학교 때로 다시 돌아가 보자. 물에 전기를 흘려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물의 전기분해(수전해)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수소를 이용한 전기 생산은 물의 전기분해 과정의 반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기 위해 전기가 필요했다면, 반대로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키면 물과 함께 전기와 열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장치가 연료전지이다. 연료전지는 자동차 전동화(電動化)의 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수소차), 발전에 이용되기도 한다(연료전지발전).

그런데 왜 '수소'라는 말 뒤에 '경제'라는 말이 붙었을까? 연료전지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연료전지는 수소라는 '연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제아무리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라도 연료인 수소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산소는 걱정 말자. 대기 중에 많다). 수소경제는 원료인 수소의 생산과 활용에 에너지 인프라 및 경제 전반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수소법은 수소경제를 "수소의 생산 및 활용이 국가, 사회 및 국민생활 전반에 근본적 변화를 선도하여 새로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수소를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경제산업구조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우주 질량의 75% 차지하는 수소

사실 수소는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흔한 원소다. 하지만 수소는 순수한 수소 분자 상태로 존재하기보다는 다른 것들과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산소와 결합한 물, 탄소와 결합한 석유가 한 예다. 따라서 수소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원소와 결합된 수소를 분리해야 하고, 이를 위한 대규모 시설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원소기호 1번인 수소는 원소 중 가장 가벼워, 높은 압력을 가하거나 LNG처럼 온도를 낮춰 액화시키지 않으면 밀도가 낮아 효율적인 저장 및 운송이 어렵다. 그만큼 수소는 생산, 운송, 보관의 과정이 간단치가 않다. 수소를 이용하기 위해 인프라 전반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소는 일단 인프라가 갖추어지면 규모의 경제 구현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유럽 수소로드맵을 발표하고 수소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산업 · 경제 전반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수소로드맵은 수소가 운송 · 산업 · 건물 분야 대규모 탈(脫)탄소화를 위한 최적 혹은 유일한 선택지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수요가 적을 때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필요할 때 다시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거나 원료로 활용함으로써 에너지 저장 · 운송매체로 기능할 수 있어, 수소가 섹터 커플링(Sector Coupling)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EU는 2030년까지 그린수소(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하여 만들어진 수소와 같이 생산과 이용과정에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수소) 생산을 위한 태양광 · 풍력발전소 건설에 2,200억~3,400억 유로를, 수전해장치 증설에 240억~420억 유로를, 수소의 운송 · 충전 · 보관 인프라에 650억 유로를, 각각 투자해 인프라 전반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올 2월 제정된 우리 수소법은 수소경제 이행을 위한 추진 체계, 수소 전문기업 육성 · 지원에 관한 근거, 수소충전소 및 연료전지 설치와 이의 촉진, 인력양성 등 기반구축,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수소경제 이행 추진체계를 마련하였다. 실무적으로는 수전해 설비 등 저압 수소용품 및 수소연료사용시설에 대한 안전확보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수소전문투자회사 설립 근거 주목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수소법에 자본시장법상 회사형 집합투자기구로 수소전문투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수소전문투자회사는 자본금의 50%를 초과하여 수소전문기업에 투자하여야 하며, 차입 등이 제한되는 공모형 집합투자기구와 달리 수소사업 투자에 사용할 자금이 부족한 경우에는 자본금의 30% 이내에서 차입도 가능하다. 아울러 연기금의 수소전문투자 회사 출자의 근거도 두고 있다. 다만, 해외자원개발법상 투자위험보증사업과 같이 산업초기 단계의 투자위험을 헤지할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 공정거래법, 금융산업구조개선법 등을 고려할 때 집합투자기구의 형태를 회사형으로 한정한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환경이 열악한 우리로서는 그린수소를 국내에서 생산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수소는 저장과 운송이 가능하다. 신재생에너지 발전환경이 우수한 국가에서 우리가 직접 그린수소를 생산하거나 이들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원유 대신 수소를 수입하는 것이다.

탄소국경세 등 무역장벽 대응 전략

독일조차 지난 6월 발표한 수소국가전략에서 신재생에너지 생산량 부족과 그로 인해 여전히 에너지 수입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20억 유로를 투자해 다른 나라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호주로부터 갈탄에서 추출한 수소를 수입하는 시범사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작년 '한-호주 수소협력 의향서'를 체결하고 호주와 그린수소 도입 등을 위한 워킹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연료를 수입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점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화석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로 전환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나날이 심해져 가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일 뿐만 아니라,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우리로서는 EU에서 논의되고 있는 탄소국경세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 관련 무역장벽에 대한 대응 전략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수소에 관한 지금과 같은 관심이 식지 않고 꾸준히 지속되어 수소경제라는 화두가 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를 앞당기고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판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pskim@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