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아동 · 청소년 속여 성관계했다면 동의했어도 위계간음죄"
[형사] "아동 · 청소년 속여 성관계했다면 동의했어도 위계간음죄"
  • 기사출고 2020.08.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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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종전 판례 변경…'위계'의 의미 넓게 해석

성관계로 이끄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해 아동 · 청소년이 성관계에 동의하게 만들었다면 '위계에 의한 간음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위계'의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해 성관계 자체를 속이는 경우만 위계에 의한 간음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8월 27일 아동 ·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계에 의한 간음 혐의로 기소된 A(36)씨에 대한 상고심(2015도9436)에서 이같이 판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 7월 중순경 스마트폰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하여 알게 된 14세의 B양에게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거짓으로 소개하고 다른 사람의 사진을 마치 자신의 사진인 것처럼 B양에게 전송하면서 대화를 시작, 채팅을 계속하면서 서로 사귀기로 한 후 "가슴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요구해 B양이 5회 가슴부위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자 B양을 유인해 내 성관계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2014년 8월 초순경 채팅을 통해 B양에게 "사실은 나를 좋아해서 스토킹하는 여성이 있는데, 나에게 집착을 해서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라고 거짓말하면서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려면 나의 선배와 성관계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여, A씨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헤어지자고 할까 봐 겁을 먹은 B양에게 'A씨의 선배’를 만나 성관계하겠다는 승낙을 받았다. A씨는 2014년 8월 2일 오전 9시쯤 여수시 오림동에 있는 여수시외버스터미널에서 B양을 만나 자신을 'A씨의 선배'라고 소개하면서 차량에 태운 후 차량을 운전하여 한 해수욕장 근처 공터에 정차한 뒤 B양과 계속해서 세 차례 성관계를 한 혐의(아동 ·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위계등간음)로 기소됐다. B양은 사건 이후 A씨와 계속하여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다가 12일 지난 8월 14일 수사기관에 신고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위 행위를 위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자 검사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고 선언하고,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종전 판례를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은 다만,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 및 행위자와의 관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위계에 의한 간음죄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나이, 성장과정, 환경, 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고, 일반적 · 평균적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또는 충분한 보호와 교육을 받은 또래의 시각에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속아 피고인과 성관계한 것이고, 피해자가 오인한 상황은 간음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된 것으로, 이를 자발적이고 진지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피고인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와 간음행위를 한 것이므로 이러한 피고인의 간음행위는 위계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오인, 착각, 부지의 대상을 간음행위 자체 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다른 조건에 한정하지 않고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대상으로 확정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