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판사'가 풀어낸 음식과 법의 세계
'혼밥 판사'가 풀어낸 음식과 법의 세계
  • 기사출고 2020.08.1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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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전 판사, 두번째 에세이집 출간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에 2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나 재판 중에는 별말이 없던 그가 재판장이 판결을 선고한 직후에 법정에서 말했다. "재판장님, 제가 탈영한 것은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가 집행유예의 뜻(유죄이지만 이제 곧 풀려난다는 것)을 잘 몰라서 당장 감옥에 1년을 가야 하는 줄 알고 급하게 변명을 끄집어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리를 뜨는 어수선한 법정에서 나는 그에게 집행유예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그날 한밤중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헌병계장이 그가 자살했다고 전했다. 조사결과 두 병장이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혀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뒤늦게 깨달았다. 재판이 선고된 직후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이제 곧 풀려난다는 집행유예의 뜻을 외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곧 원래 있던 부대로 되돌아가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혼밥 판사
◇혼밥 판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의 작자인 정재민 전 판사가 음식을 매개로 판사로서 직접 판결을 내렸거나 당시 전해들은 사건을 풀어낸 에세이집 《혼밥 판사》를 펴냈다. 앞에 소개한 내용은 강원도 화천의 전방부대에서 군검사로 근무할 때 있었던 라면에 얽힌 이야기. 저자는 당시 이틀간 산속에 숨어 있다가 내려온 이 탈영병에게 법무부 안에 있던 휴대용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였다.

저자에 따르면, 재판은 언제나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그리고 사연을 낱낱이 청취하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 역시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바라보며 회의에 빠지고 상처를 입곤 한다. 저자는 그럴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혼자 밥을 먹었다고 했다. '혼밥 판사'가 되었다.

혼밥 판사가 음식의 세계와 법의 세계를 함께 풀어낸, 판결문에 미처 담지 못한 온갖 맛의 세상만사 이야기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