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부서 전보 뒤 과중한 업무에 돌연사…산재"
[노동] "부서 전보 뒤 과중한 업무에 돌연사…산재"
  • 기사출고 2020.08.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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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기존질환 급격 악화되어 급성심장사"

13년 가까이 근무하던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전보된 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직장인이 돌연사했다. 법원은 동맥경화 등 기존질환이 있었더라도 업무상 재해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02년경 사단법인 B협회에 입사하여 13년 가까이 기획조사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1월경 구매부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1년 5개월 뒤인 2016년 6월 27일과 28일 이틀간에 걸쳐 회의와 거래처를 위한 여러 세미나, 회식에 연달아 참석한 뒤, 다음날인 6월 29일 집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숨졌다. 이에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건강검진 결과 고혈압 소견이 나타나는 등 기존질환이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되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2017구합78636)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7월 9일 "A는 직무가 과중함에 따라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했던 기존질환인 비후성심근증, 동맥경화 등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어 급성심장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A의 사망과 그가 수행하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B협회는 구매부의 종전 근무자들이 연이어 사직함에 따라 관리직은 물론 실무직의 역할을 두루 수행할 수 있는 A를 구매부에 전보하고, (A로 하여금)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지적받은 사료 수입신고 업무를 수행하게 함과 동시에 농림축산식품부 개최 회의에 참석하는 이른바 대관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등 여러 중요한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게 하였고, A가 사망한 후 B협회는 사료 수입신고 업무를 분리하여 기획조사부로 이관하기도 하였으므로 구매부에서 수행하던 업무가 하나의 부서에서 수행하기 곤란할 만큼 다양하고 과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이에 따라 A가 주변 사람들에게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여러 차례 호소하였는바, 그 스스로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는 구매부에서 실질적인 최선임자라는 생각에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B협회의 구매부는 A가 전보되었을 무렵 사료 수입신고와 관련된 업무량이 크게 증가했는데, 단순히 접수되는 신고 건수가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종전과 달리 직접 시료를 채취하는 것으로 업무 내용이 변경되었다. B협회는 2014년 11월경 이전까지는 수입사료 시료를 직접 채취하지 아니하였으나,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적에 따라 A가 구매부에 근무하기 시작한 2015년 1월경 이후로는 A가 사료 시료 채취를 위하여 서울에 있는 B협회 본사에서 공항이나 항구 등 거리가 먼 지역까지 직접 운전하여 여러 차례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재판부는 특히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회식에 반복적으로 참석하여 단기간에 체력적 부담이 상당한 수준으로 가중되었고, 사망 전날에는 예정에 없던 이사회에 급히 참석하여 다음 날까지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요구받아 추가적인 업무에 대한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비후성심근증이 의심되고, 동맥경화 소견이 보이던 A와 같이 구조적인 심장 이상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단기간의 업무 과다나 돌발적인 업무 변화와 같은 급성 스트레스가 기존질환을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시킬 개연성이 있고, A가 사망하기 전 위와 같이 술을 마시는 회식에 반복적으로 참석하거나, 예정에 없던 주요 업무를 부담하게 된 것은 일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돌발적인 업무 변화로서 A의 기존질환을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