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평소 촬영 동의했어도 잠든 여자친구 나체 몰래 촬영하면 유죄"
[형사] "평소 촬영 동의했어도 잠든 여자친구 나체 몰래 촬영하면 유죄"
  • 기사출고 2020.08.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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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묵시적 동의 쉽게 단정 불가"

평소 여자친구의 동의를 받고 신체 부위를 촬영한 적이 있더라도 상대방이 잠든 사이 나체사진을 몰래 찍었다면 유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7월 23일 상해와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감금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모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6285)에서 이같이 판시,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박씨는 2017년 8월 13일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팬티 기저귀를 착용한 채 나체로 잠을 자고 있는 여자친구 A(25)씨의 신체를 A씨의 의사에 반하여 2차례 촬영하고 그해 겨울에도 나체로 잠을 자고 있는 A씨의 신체를 A씨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는 등 2017~2018년 모두 6차례에 걸쳐 휴대폰으로 나체로 잠든 A씨의 신체를 촬영했다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2018년 8월 26일 오전 1시쯤 부산 수영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A씨가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남자와 연락하는 것을 보고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나 주먹과 발로 A씨의 얼굴 부위와 몸을 수 회 때려 전치 약 14일의 상해를 입히고, 오전 3시쯤까지 집 밖으로 나가려는 A씨의 머리채를 잡고 방 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서 무릎을 꿇고 비는 A씨에게 "그거 가지고 안 죽으니까 아침에 가라"고 말하는 등 겁을 주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여 감금한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박씨의 상해와 감금 등의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각 기재와 같이 고소인(A)의 신체를 촬영하기 전 고소인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인과 고소인의 관계(평소 명시적 · 묵시적 동의하에 많은 촬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임), 각 공소사실 기재 일시를 전후하여 촬영된 그 밖의 사진의 내용(증거기록에 첨부되지 않은 더 많은 사진 및 동영상도 있는 것으로 보임), 촬영의 동기와 경위, 고소의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고소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같은 무죄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고소인과 피고인이 연인관계에 있으면서 피고인이 고소인의 동의를 얻은 상태에서 또는 고소인의 명시적인 반대의사표시 없이 고소인의 신체 부위를 촬영한 적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나, 고소인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고소인의 신체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거나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고소인이 피고인에게 언제든지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는 것에 동의했다거나 고소인이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나체 사진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고소인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촬영한 사진은 주로 특정 신체 부위를 대상으로 한 반면, 공소사실 기재 각 사진은 고소인의 얼굴을 포함한 신체 전부가 현출되어 고소인이 특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잠들어 있는 고소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에 대해 고소인이 당연히 동의했으리라고 추정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고소인은 경찰에서 "성관계를 가지다보면 피고인이 중간에 휴대폰을 꺼내들고 동영상을 촬영하였다. 영상을 지우라고 말한 사실은 있으나 이후 지웠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다. 제가 자고 있으면 저의 몸을 사진 촬영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자다가도 찰칵 소리가 들려 일어난 적이 수없이 많았다"라고 진술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고소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고소인이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는 행위에 대해 명시적 ·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고소인으로부터 신체 촬영 영상을 지우라는 말을 들어온 점, 고소인이 자고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몰래 고소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도 공소사실 기재 각 사진을 촬영하면서 고소인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피고인이 고소인의 나체 사진을 유포할 목적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범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고, 고소인은 경찰에서 '피고인이 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피고인이 고소인의 동의 없이 자고 있는 나체 사진을 촬영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이 사건에서 고소의 경위를 의심할 만한 사정이나 고소인의 동의를 추정할 만한 다른 사정을 발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