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꼬리 자른다고 도마뱀 없어지지 않아"
"도마뱀 꼬리 자른다고 도마뱀 없어지지 않아"
  • 기사출고 2004.07.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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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풍' 재판부 판결문에 나타난 YS 비자금 관련 대목들
강삼재, 김기섭 두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7부 노영보 부장판사는 7월 5일 판결을 선고하기에 앞서 여담이라 전제한 뒤 "도마뱀 꼬리를 자른다고 도마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도마뱀이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만 될 뿐"이라고 말해 '안풍 사건'에 동원된 돈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김영삼 전대통령의 비자금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도 이런 가능성을 암시하는 표현을 여러차례 구사해 주목된다.

재판부는 우선 피고인 김씨가 오로지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에 자금을 지원하였고, 신한국당 자금 지원시 강씨를 만나 직접 940억원을 전달하였다고 진술한 것과 관련, "김씨가 직접 강씨에게 이 사건 자금을 전달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못박고, 이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김 전 대통령의 지시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판단만으로 여당 사무총장에게 일방적으로 연락하여 1197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였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며 "가사 김씨가 독자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안의 성격상 당 총재인 김 전 대통령에게도 그 내용이 보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김씨로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인데, 김 전대통령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이 사건 자금 지원을 시행하였다는 것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강씨는 이 사건 자금을 수령한 뒤 그 중 상당액을 당시 자신의 당 보좌역이나 경리실 당직자, 수행비서 등의 명의로 소액권 수표로 교환하게 하여 사용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자금원을 노출하는 것이라서 자금 흐름을 은폐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며 "또한 김씨가 인출한 수표는 짧게는 두세달 길게는 심지어 11개월 후에야 피고인 강씨를 통하여 신한국당 관리계좌에 입금되었는데 이 점도 결국 피고인들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이 사건 수사 개시때부터 당심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자금을 전달받은 사람은 절대 밝힐 수 없다면서 적어도 강씨가 전달받은 것은 절대 아니라고 일관하여 진술해 왔다. 그러나 강씨가 당심 5회 공판기일에 이르러 이 사건 940억원을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자, 그 직후 갑자기 종전의 일관된 진술을 번복하면서 강씨에게 940억원을 전달하였다고 진술했다"고 한 후 "김씨가 강씨에 대한 진술을 번복한 것은 강씨가 김 전 대통령 관련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더 이상 강씨를 옹호하는 경우에는 자칫 자신이 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김 전 대통령의 이 사건 자금 관련사실이 모두 밝혀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강씨가 김 전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집무실에서 직접 940억원을 건네 받았고, 당시 이 자금의 정확한 출처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며

"강씨의 진술은 이 사건 자금 흐름과 관련, 지극히 상식적이고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이유로 "김 전 대통령이 민주자유당이나 신한국당의 사무총장 등 고위 당 관계자들에게 위 자금 전액을 직접 전달하였다면, 그 자금 출처에 대하여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전달받는 당 관계자들로서도 구태여 자금 출처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강씨의 진술이) ▲김씨가 고위 당 관계자들을 일일이 접촉할 필요없이 민자당과 신한국당에 대한 이 사건 각 자금 지원이 계속적이고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 ▲강씨가 자금 흐름 노출에 관하여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유 ▲안기부 관리계좌에서인출된 자금이 당에 전달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유 ▲김씨가 계속하여 자금을 전달받은 사람에 대하여 묵비하면서 강씨는 아니라고 주장하였던 이유를 모두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증거상으로도 강씨가 신한국당 사무총장으로서 수시로 청와대에서 김 전대통령을 독대하였고, 96년 1월 25일과 27일 합계 400억원이 안기부 관리계좌에서 출금되어 96년 1월 30일 강씨가 관리하던 주식회사 H건설 계좌에 입금되었는데, 그 사이인 96년 1월 28일 강씨가 청와대를 방문한 사살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안기부 관리계좌에서 확인되는 출처불명의 막대한 자금이 김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금일것이라는 추측과도 부합하고, 강씨와 김 전 대통령 사이의 관계에 비춰 강씨가 김 전대통령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이같은 사실에 관하여 허위의 진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아도 강씨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이우근 수석부장은 그러나 판결 선고후 기자들을 만나 " 누구의 돈이었는 지는 검찰에서 밝혀야 할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그것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강삼재 피고인측의) 그런 주장이 신빙성이 있고 그동안의 의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