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동학개미와 로빈후드
[리걸타임즈 칼럼] 동학개미와 로빈후드
  • 기사출고 2020.07.3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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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뜨겁다. SK바이오팜으로 촉발된 공모주 시장의 열기도 계속되고 있다.

올 초 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올해 한국 자본시장의 화두는 "불확실성"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되자 한국 자본시장을 비롯한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미증유의 불확실성에 빠졌고, 지난해 상장승인을 받고 1, 2월에 공모를 진행하고 있던 거의 모든 국내 기업들이 IPO를 철회했다. SK바이오팜도 그 시점에서는 누구도 성공적인 상장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행규 변호사
◇이행규 변호사

그런데 어느새 코로나19는 일상이 되었고, 근시일 내에 종료선언이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면서 자본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비대면 환경과 새로운 성장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상장을 위한 공모를 위해서는 투자자와의 접촉과 면담, 설명(Investor Relation, IR)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대면 방식(특히 해외 로드쇼의 경우)의 IR이 일상화되었고, 자본시장 참여자들도 익숙해졌다. SK바이오팜이 전통적인 대면 로드쇼(road show)를 통하지 않고서도 해외기관투자자들로부터 성공적인 수요예측 결과를 도출한 것은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장면이다.

일상화 된 비대면 IR

국내 자본시장, 특히 주식시장의 회복은 소위 '동학개미 운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개미투자자들의 투자의지와 주식시장 활력에 기여한 바를 언급하여 주식 양도소득세의 부과한도가 상향되고(당초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상향) 증권거래세도 단계적으로 축소될 예정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개미들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에게 늘 패배하고 손실을 봐 왔던 과거의 개미가 아니다.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발전에 조응하는 주식시장 변동에 대한 경험과 지식으로 저가매수 전략을 구사해 최근 회복된 증시에서 성공적인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코로나19 초기의 shut down, lock down으로 촉발된 극도의 불안감에 한국 주식을 투매했던 외국인 보유 지분을 동학개미가 모두 받아냈다. 액면분할을 통해 투자단위가 낮아진 삼성전자는 수십만 명의 개인주주가 새롭게 등장하여 어느새 국민주로 거듭나는 상황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W자 회복 예상과 달리 단기적으로는 V자 반등에 성공한 한국 주식시장은 이 투매물량을 받아냈던 개미들에게 상당한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동학개미는 스마트개미

이런 개미투자자들은 속칭 '스마트개미'로 불린다. 그리고 과거보다 훨씬 쉬워진 해외 주식투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미국과 중국 주식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정보가 독점되고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던 개미투자자들은 다양한 유튜버들을 통해 학습하고 글로벌 경기 동향과 국내정책의 흐름을 스스로 분석해가며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기관과 외국인, 전문 애널리스트들의 전유물이었던 고급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다양화되어 자산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보다 균등해진 것이다.

한국 '동학개미’의 절반가량은 20~30세의 젊은 세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초 2,936만 2,933개였던 주식거래 활동계좌수는 지난 7월 9일 3,217만 2,683개로 불어났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과실을 향유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주식투자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을 '부추'라고 부르는데, 윗부분을 잘라내어도 또 자라는 부추처럼 개인투자자들이 전문성과 풍부한 자금을 갖춘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용만 당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과거 국내 개인투자자들도 '부추'라 불릴 만했었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동학개미들은 더 이상 부추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7년 전 무료 트레이딩 플랫폼 개설

한편 미국에서는 로빈후드(Robinhood)라는 무료 주식거래 플랫폼이 미국판 동학개미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사실 미국인들에게 뉴욕증시는 백인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그들만의 리그'로 불렸다. 그런데 2013년 4월 블라디미르 테네브(Vladimir Tenev)와 바이주 바트(Baiju Bhatt)라는 젊은 이민자 2세들은 2011년부터 진행된 '월가를 점령하라'는, 탐욕적인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에 반발하는 젊은이들의 시위에서 영감을 얻어 '부자들만이 아닌, 누구든지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의적(義賊) 로빈후드의 이름을 내건 무료 트레이딩 플랫폼을 만들었다.

당시 증권사들은 건당 7~10달러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로빈후드는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에 고객들이 맡겨둔 예탁금에서 발생하는 이자나 회사가 제공하는 신용융자 거래에 부과하는 이자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친구를 초대하면 1주식을 주거나, 1주 미만도 거래가 가능하며,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친숙하도록 복잡한 숫자 대신에 직관적인 그래픽과 색깔로 정보를 제공한다.

로빈후드의 출현은 전통적인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에게 수수료 경쟁을 불러와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급기야 온라인 증권사인 TD아메리트레이드가 찰스슈왑에 팔리고 이 트레이드가 모건스탠리에 팔리는 등 업계 구조조정까지 촉발해 미국 금융서비스산업에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까지 촉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로빈후드의 등장으로 소득 하위층과 청년, 흑인, 히스패닉의 주식투자 비중이 비약적으로 늘어, 작년 말에 1,000만개 남짓했던 로빈후드의 계좌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뉴욕증시 폭락에 즈음해 300만개 이상 급증해 최근 1,300만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과 유사하게 불어난 개미투자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뉴욕증시에서도 기관들의 투자전략과는 다른 position을 취하면서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고 하니 흥미롭지 않은가.

동학개미의 활약이 국내 주식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뉴욕증시와 중국증시를 넘나들고 있다. 해외금융투자가 소수의 펀드매니저나 기관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영민한 동학개미들은 테슬라, 아마존 등의 주식을 거래해 투자수익을 올리고 국가에 소득세까지 납부하고 있다.

동학개미들 테슬라 주식까지 거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부동산에 접근이 어려운 청년층과 코로나19로 우울해하고 있는 아줌마들에게도 주식시장은 자산 증식의 기회로 여겨지고 있고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주식투자를 한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개인들이 주식투자로 돈을 버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늘 말해 왔는데, 이는 실제로 주위에 주식투자로 돈을 번 개인들이 별로 없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외국인이나 기관투자자에 의존하던 한국 주식시장에 개인투자자들이 새로운 투자주체로 나서 과도한 변동성을 줄이고 있고,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양질의 성장자본을 공급하고 있으며, 시급한 재무구조개선이 필요한 기업들의 공모 유상증자에도 참여하여 구제금융과 유사한 집단적 지원을 하고 있다. 개인들의 주식투자를 달리 보아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투자에 따르는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동력과 주체로 성장하고 있는 동학개미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역동적인 글로벌 자본시장을 통해 제대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

이행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hglee@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