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경찰 수사협조자 제안에 보이스피싱 범행 가담했어도 유죄
[형사] 경찰 수사협조자 제안에 보이스피싱 범행 가담했어도 유죄
  • 기사출고 2020.07.3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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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범행 기회 제공 불과…위법한 함정수사 아니야"

경찰 수사에 협조하는 사람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했더라도 유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여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하게 한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모씨는 2019년 10월 23일경 남 모씨로부터 '체크카드를 수거하여 현금을 인출해주면 인출금액의 15%를 수수료(수고비)로 주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받고, 다음날인 10월 24일 오후 2시 48분쯤 서울 강동구 천호대로에 있는 지하철 5호선 천호역 1번 출구 앞길에 세워진 자전거의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 남씨로부터 계좌가 정상계좌인지 확인하기 위해 체크카드를 이용하여 입출금하는 과정 즉, 세차작업을 위탁받은, 남씨 명의의 신한은행 체크카드 1장과 하나은행 체크카드 1장을 수거하여 보관하였다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가 징역 1년을 선고하자, 김씨가 "체크카드 보관을 제의한 남씨는 경찰의 수사협조자로서 나를 체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 명의의 체크카드를 건네준 것"이라며 "나의 범행은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에 의한 것이므로 공소가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범행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일부 개입되었다 하더라도 변호인 주장과 같은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로 보이지는 않고 이미 범의를 가지고 있는 피고인에 대하여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뿐이므로, 검사의 공소가 위법하여 무효라고 할 수 없다"며 김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가, '죽을 용기로 일하실 분, 밑바닥인 분들 오세요'라는 다음 카페에 올라온 '출집(대포 계좌에 입금된 피해금을 인출하여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송금하는 인출책), 장집(피해금을 입금받을 대포 계좌와 이에 연결된 체크카드를 수집하는 모집책)을 구한다'는 내용의 게시글에 댓글로 자신의 텔레그램 아이디를 남겨 놓아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에 가담할 의사를 보인 점, 김씨는 남씨 외에도 다음 카페에서 알게 된 다른 성명불상자로부터 체크카드 수거 및 인출 제안을 받고 2일에 걸쳐 이를 실행한 점, 경찰의 수사협조자인 남씨가 김씨에게 체크카드 수거 및 현금인출 작업을 제안하자 김씨가 이에 응하여 수수료율을 높이기 위한 협의를 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도 7월 9일 "원심의 판단에 함정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김씨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2020도4833).

대법원은 먼저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사람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하게 하여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하다"고 전제하고,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당 범죄의 종류와 성질, 유인자의 지위와 역할, 유인의 경위와 방법, 유인에 따른 피유인자의 반응, 피유인자의 처벌 전력 및 유인행위 자체의 위법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인자가 피유인자와의 개인적인 친밀관계를 이용하여 피유인자의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적 · 심리적 압박이나 위협 등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거나, 또는 범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범행에 사용될 금전까지 제공하는 등으로 과도하게 개입함으로써 피유인자로 하여금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지만 유인자가 수사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피유인자를 상대로 단순히 수차례 반복적으로 범행을 부탁하였을 뿐,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설령 그로 인하여 피유인자의 범의가 유발되었다 하더라도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