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문제에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니라면?
법률문제에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니라면?
  • 기사출고 2020.07.2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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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명의 법률가가 짚어낸 "법의 딜레마"

형사법의 대원칙 중 하나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피고인의 범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하며, 증거를 위법하게 수집하였다면 그 증거능력은 배제된다는 이 원칙은 역사가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형사소송법에도 명문화되었고(제308조의2), 이 규정이 시행되기 직전에 나온 대법원 2007.11.15.ᅠ선고ᅠ2007도3061ᅠ전원합의체 판결도 이를 명시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적용 범위는 나라마다 또 시기마다 다르고, 지금도 그 적용 범위가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는 이 원칙 자체가 적법수사의 원리를 강조하는 반면 실체적 진실을 희생시키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은 피고인이 죄를 저질렀음이 확실한 경우에까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 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법의 딜레마
◇법의 딜레마

최근 법문사에서 출간된 《법의 딜레마》는 복수의 법적 이익, 법원리가 충돌하는 법률문제에 관한 법률가, 법학자들의 고민을 묶어낸 책이다. 모든 법률문제에 하나의 정답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고민은 불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사건에서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부모가 장차 낳게 될 자녀가 정상아이면 낳고, 장애아이면 낳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의사가 그 판단을 그르쳐서 정상아를 낳을 것으로 생각하고 출산하였으나 장애가 출산한 경우, 장애아로 출생한 자녀 자신은 의료인에게 어떠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인 윤진수 교수에 따르면, 장애아의 손해배상청구는 결국 자기를 태어나지 않게 했어야 한다는 데 귀착하나 이는 장애를 가진 삶이라고 하여도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물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삶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나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소극적 안락사와 장기이식의 허용은 어찌되었든 존재와 비존재를 비교평가하고 그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 비존재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책에선 모두 48명의 법률가와 법학자가 이처럼 딜레마에 빠뜨리는 법률문제들을 서술했다. "악의 혼재성 또는 검찰개혁의 딜레마", "다수지배의 딜레마와 소수결의 필요성", "뇌과학,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딜레마" 등 눈길을 끄는 주제들이 많다.

대표편집자 중 한 명인 윤진수 교수는 "독자들이 법률가와 법학자가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라고 머리말에 적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