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침례 안 받은 여호와의 증인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잘못"
[형사] "침례 안 받은 여호와의 증인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잘못"
  • 기사출고 2020.07.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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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의문"

여호와의 증인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인 침례를 받지 않은 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남성에게 대법원이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특히 판결에서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밝혀 주목된다. 대법원은 먼저 "구체적인 병역법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그 양심이 과연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사물의 성질상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예컨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주장에 대해서는 종교의 구체적 교리가 어떠한지, 그 교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명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 종교가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이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오로지 또는 주로 그 교리에 따른 것인지, 피고인이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와 경위, 만일 피고인이 개종을 한 것이라면 그 경위와 이유,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등이 주요한 판단요소가 될 것이며,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과 동일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실형으로 복역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는 등의 사정은 적극적인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위와 같은 판단 과정에서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통하여 형성되고, 또한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의 실제 삶으로 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은 범죄구성요건이므로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다만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마치 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을 검사가 증명책임을 다하였는지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

대법원은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인은 자신의 병역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며 "이때 병역거부자가 제시하여야 할 소명자료는 적어도 검사가 그에 기초하여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확인했다.

현역병 입영대상자인 이 모씨는 2015년 11월 2일경 2015년 12월 8일까지 춘천시에 있는 보충대에 입영하라는 경남지방병무청장 명의의 입영통지서를 수령하였으나 입영일로부터 3일이 경과한 날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항소심 재판부도 1심의 결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상고심 재판부는 2018년 11월 1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2016도10912) 판결의 취지에 따라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되돌려보냈고, 이씨는 이어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엔 검사가 상고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그리고 7월 9일 이씨에 대한 재상고심(2019도17322)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다시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다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인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심리미진 등을 이유로 파기환송한 최초의 사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법원은 특히 이 사건에서 이씨가 다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로부터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의식인 침례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모든 종교는 각각의 교리에 맞는 고유한 의식을 가지기 마련이고, 이러한 의식은 어느 한 종교를 다른 종교들과 구분하는 기준이 되거나 그 종교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며, 신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의하여 대대로 유지 · 계승된다는 특징을 갖기 때문. 대법원은 따라서 어느 종교의 신도들이 그 고유의 의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종교생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는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자신이 이른바 '모태신앙'으로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인 어머니의 영향 하에 어렸을 때부터 해당 종교를 신봉하여 왔다고 주장하면서도, 위 종교의 공적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 종교의 다른 신도들로부터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의식인 침례를 병역거부 당시는 물론이고 원심 변론종결 당시까지도 받지 아니하였다"고 지적하고, "비록 침례를 받았는지 여부 자체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이 그의 내면에 실재하는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사항은 아닐지라도,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의 특성상 피고인이 밝히는 양심과 불가분적으로 연계된 종교적 신념이 얼마만큼 피고인에게 내면화 · 공고화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초로 삼기에는 충분하고, 더욱이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인 침례를 아직까지 받지 않은 경위와 이유는 물론이고, 향후의 계획 등에 대하여도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피고인이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로서 봉사활동을 한 자료라면서 제출한 사진 몇 장과 학교생활에 관한 자료로 제출한 초 · 중 ·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편철되어 있을 뿐, 위 종교에서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이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지, 피고인의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떠하였는지 등을 보여주는 위 종교단체 명의의 사실확인서나 그 밖에 이에 관하여 알 수 있는 다른 자료들은 제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피고인이 제출한 사진들이나 학교 생활기록부를 보아도 피고인이 어떠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종교적 활동을 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이처럼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라고 하면서도 아직 침례를 받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및 그 과정 등에 관하여 구체성을 갖춘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있어,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가정환경 및 성장과정 등 삶의 전반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 및 가르침이 피고인의 신념 및 사유체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지속적이면서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고, 나아가 설령 피고인이 그 주장대로 침례를 받지 않고도 지금까지 종교적 활동을 하여 온 것이 맞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종교적 활동은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 내지 신앙에 관하여 확신에 이르거나 그 종교적 신념이 내면의 양심으로까지 자리 잡게 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행해질 수 있다"며 "피고인이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주장하는 '양심'이 과연 그 주장에 상응하는 만큼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밝혔다.

"구체적 소명자료 요구해 추가 판단해야"

대법원은 "원심은 위에서 본 의문점들을 비롯하여 피고인이 주장하는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및 그 과정 등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시하도록 석명을 구한 다음 이에 따라 추가로 심리 · 판단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에게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보아 공소사실을 무죄라고 판단하였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