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복수 노조에 동일한 단체교섭안 제시했다면 일부 노조가 거부했어도 부당노동행위 아니야"
[노동] "복수 노조에 동일한 단체교섭안 제시했다면 일부 노조가 거부했어도 부당노동행위 아니야"
  • 기사출고 2020.07.0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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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화학회사 경영진, 항소심서 무죄판결

복수 노조를 서로 차별 대우하며 노조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화학회사의 경영자들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법원은 사용자가 복수의 노조에 동일한 내용의 단체교섭안을 제시하였다면 그 단체교섭안의 내용이 합리적인 한 일부 노조가 이를 수용하고 다른 노조는 이를 거부하였더라도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 마포에 본점을, 울산 남구에 울산공장 등을 두고 상시근로자 290여명을 고용하여 폴리우레탄수지류의 제조와 판매업 등을 하는 K케미칼은, 조합원 40여명으로 구성된 K케미칼노동조합(1노조)에 2015년 8월부터 11월까지 '호봉제 폐지, 성과급 지급기준 변경'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협약안을 제시하고 9차례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1노조가 임금 삭감 반대 등을 이유로 이 단체협약안을 수용하지 아니하여 결렬되었고, 1노조는 2015년 12월부터 약 3개월간 이와 같은 이유로 파업을 하였다. 이후 2016년 5월 이 회사에 조합원 30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노조인 K케미칼제일노동조합(2노조)가 설립되었다. 

회사는 2016년 9∼10월부터 2개 노조와 각각 2016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였으나, 1노조는 '호봉제 폐지, 성과급 지급기준 변경' 등을 내용으로 하는 회사의 단체협약안에 극구 반대하여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고, 2노조는 회사의 단체협약안을 대체로 수용하면서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회사는 2016년 12월 1노조와 2노조에게 '회사가 제시한 단체협약안에 합의하면 경영성과급 310%(통상임금 기준), 취업규칙개선격려금 100%를 지급하겠다'는 추가 조건을 제시했다. 1노조는 회사의 성과급 등 지급 조건이 추가된 단체협약안을 수용하지 않았으나, 2노조는 회사가 제시한 단체협약안에 합의했다. 

검찰은 그러나 회사가 제시한 추가 조건이 1노조가 임금 삭감 등을 이유로 극구 반대해온 회사의 단체협약안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1노조의 수용 가능성이 희박하였던 반면, '기본성과급 차등지급 미적용' 등 2노조의 요구사항 일부가 반영되는 등 2노조의 수용이 충분히 예상되는 사실상 차별적인 조건 제시에 불과하였다고 보아, 1노조와 2노조를 차별적으로 취급함으로써 1노조 소속 근로자들로 하여금 1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여 1노조에서 탈퇴할 마음을 먹게 하거나, 그로 인하여 1노조가 단체협약 등에 관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도록 영향을 미치는 등 1노조의 운영에 지배 · 개입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로 이 회사의 사장 김 모(60)씨와 부회장 양 모(51)씨를 기소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81조 4호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 운영하는 것에 개입하는 행위로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며 김씨와 양씨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검사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김씨와 양씨는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며 각각 항소했다.

울산지법 형사2부(재판장 김관구 부장판사)는 6월 26일 "피고인들의 행위가 부당노동행위라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에는 사용자의 중립유지의무의 내용 및 그 위반으로 인한 부당노동행위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원심을 깨고, 김씨와 양씨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2019노1258).

재판부는 먼저 "협약안의 제안배경,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최종 협약안의 내용이 비합리적이라고 보이지 아니하고, 또한 새 취업규칙을 적용받는 근로자에게 취업규칙개선격려금 등을 지급한다는 내용 자체는 중립적이며 특정 노조만을 차별하여 불리 또는 유리한 처우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이어 "1노조에 가입한 노조원의 수가 파업 이전에는 106명이었는데 2016. 3.경 파업 종료 후 1노조원 22명을 영구제명한 이래로 2016. 5.경 15명, 2016. 11.경 8명이 각 1노조에서 탈퇴하여 회사의 최종 협약안 제시 전에 이미 1노조원 수가 61명까지 감소하고 있었던 점, 1노조 소속 노조원이었다가 최종 협약안 제시 후 1노조에서 탈퇴한 원심증인 이 모씨는 꼭 성과급 때문이 아니라 단체교섭이 진행되지 않는 데에 대한 회의감으로 1노조를 탈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최종 협약안이 제시된 이후 2016. 12.경 1노조원 61명 중 15명이 탈퇴하였다는 사정으로 회사가 양 노조에 최종 협약안을 제시하고 그 이후 단체교섭 결과에 따라 양 노조원간 근로조건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나 2노조와의 단체협약 및 이사회결의에 따라 2노조원과 비조합원에게 취업규칙개선격려금 등을 지급함에 있어 피고인들에게 반노동조합적인 의도가 있었다거나 1노조 소속 근로자들로 하여금 1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여 1노조에서 탈퇴할 마음을 먹게 하거나 그로 인하여 1노조가 단체협약 등에 관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도록 영향을 미치려 하는 등으로 1노조의 조직 · 운영에 지배 · 개입하려는 의사가 있었을 것이라고 섣불리 추단할 수 없다"며 "단체교섭 결과 1노조원과 2노조원간 근로조건에 차이가 발생한 것과 회사가 2노조원과 비조합원에게 취업규칙개선격려금 등의 금품을 지급한 행위는 사용자의 중립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거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