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구급업무로 정신질환 얻은 소방관의 극단적 선택은 순직"
[행정] "구급업무로 정신질환 얻은 소방관의 극단적 선택은 순직"
  • 기사출고 2020.07.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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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참혹 현장' 목격에 공황장애 등 발병

참혹한 현장에 자주 노출되는 구급업무를 10년 넘게 담당하다가 정신질환을 얻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에게 순직이 인정되었다.

1992년부터 소방관으로 일해온 A씨는 2001년 7월부터 화재진압업무 외에 구급업무를 함께 담당해오다가 2015년 4월 28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당시 46세. 이에 A씨의 배우자가 인사혁신처에 순직 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A씨의 사망은 공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되자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소송(2019구합79114)을 냈다. A씨의 배우자는 "A씨가 구급업무 등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질환을 앓다가 악화되어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김국현 부장판사)는 6월 11일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순직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는 참혹한 현장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 구급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구급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A씨의 바람대로 잠시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으나, 2015. 2.경 6개월 만에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다시 구급업무에 복귀하게 됨으로써 위 스트레스와 정신질환 모두 충분히 회복될 기회를 갖지 못해 사망 무렵의 상태는 더욱 악화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2001년 7월 이래로 사망 전까지 근무기간 중 대부분인 약 12년 동안 구급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소방관의 업무 중 구급업무는 힘든 업무 중 하나로 꼽힌다. 소방방재청이 작성한 '소방공무원 심신건강관리 종합대책'에 의하면 소방공무원이 1년간 참혹한 현장에 노출되는 빈도는 평균 7.8회로 조사되었다. A씨는 2010년 특히 많은 구급업무 활동을 하였고 그에 비례하여 참혹한 현장에도 많이 노출되었다. A씨는 2010년 한 해 동안 20회 이상 참혹현장으로 출동했다. A씨는 2010년 12월 한 정신과를 방문하여 수면장애, 불안, 공포증상을 호소하였고, 이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를 시작했다. A씨는 그때부터 2014년까지 공황장애로 38회 치료를 받았다. A씨는 2013년 특수건강검진 과정에서 '정신을 집중하기 어렵다. 정신이 멍해지거나 술 취한 느낌이 든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어지럽다.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 작업 중 가슴이 두근거린다. 식욕이 없고 체중이 줄었다' 등의 증상을 진술하였고, 2014년 특수건강검진 결과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진단되었다.

재판부는 "A씨는 2010년경부터 공황장애 치료를 시작하였다가 2013년경부터는 치료를 거의 받지 않았는데, 주변 동료들의 진술에 비추어 볼 때 이를 증상의 완화, 완치에 따른 것이라 보긴 어렵고, 약이 몸에 해롭다는 말과 직장에 알려질까 두려운 마음에 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의 상태에 대해 감정의는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실질환으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러 자살하여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