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자살예측' 인성검사 불구 후속조치 안 했다가 장병 자살…국가에 책임 인정
[손배] '자살예측' 인성검사 불구 후속조치 안 했다가 장병 자살…국가에 책임 인정
  • 기사출고 2020.06.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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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문가 상담 등 조치 취했어야"

장병에 대한 인성검사에서 '자살예측'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전문가 상담 등 후속조치가 없었다. 대법원은 이 장병이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2012년 9월 해군 하사로 임관한 A씨(사망 당시 19세)는 2013년 1월 7일경부터 한 함정에서 음탐부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2013년 5월 14일 함정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A씨의 부모와 누나, 형이 "자살의 징후를 보였음에도 소속대 관계자들이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 관리를 소홀히 하였다"며 2억 3,0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A씨는 이에 앞서 2012년 9월 6일 교육사에서 인성검사를 받았는데, '부적응, 관심(앞으로 군 생활에서 부적응이나 사고 가능성이 예측되지만, 적극적인 관심이나 도움을 통해 극복할 가능성이 높다), 자살예측'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검사에서 A씨는 '적응척도' 중 '조직적합성' 항목에서 '매우 낮음', '기본적인 능력이 부족하여 임무수행에 곤란을 겪거나 상관이나 동기로부터 지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특수척도' 항목에서 가족관계 갈등, 대인관계 문제가 있어 구체적인 면담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A씨의 소속부대 생활관 당직소대장은 검사 당일 A씨와 면담한 뒤 이와 같은 검사결과와 달리 A씨에게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하여 누구에게도 검사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담임 교관도 A씨의 인성검사 결과를 알지 못한 채 A씨와 2차례에 걸쳐 면담을 하며 A씨에게 특별한 특이사항이나 문제가 없다고 기록하였고, A씨의 소속부대는 A씨의 신상등급을 B급(보호가 필요한 병사 등)으로 분류하여 관리하다가 2012년 11월경 C급(신상에 문제점이 없는 자)으로 변경했다. A씨는 2013년 5월 13일 실시된 음탐사 기량 경연대회 모의평가에서 응시한 3명 중 가장 낮은 점수인 60점을 받아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고, 다음 모의평가를 준비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소속대 관계자들에게 당해 직무수행 과정에서 요구되는 통상의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소속대 관계자들이 A가 자살할 수도 있다는 특별한 사정에 관하여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그러나 5월 28일 원고들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7다211559). 법무법인 청신이 원고들을 대리했다.

대법원은 "군부대에서 실시되는 인성검사는 장병 중 자살우려자를 식별하기 위한 검사이므로, 인성검사에서 '부적응', '자살예측' 결과가 나왔다는 사정은 해당 장병이 군부대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며 "자살우려자의 식별과 신상파악 · 관리 · 처리의 책임이 있는 소속 부대 지휘관 등 관계자는 부대관리훈령 등 관련 규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활용하여 해당 장병을 자살우려자로 식별할지 여부를 결정하고 해당 장병의 등급을 분류하며, 자살우려자로 식별된 장병을 즉시 전문가인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등을 받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의 책임이 있는 지휘관 등 관계자가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를 파악하였더라면 이를 중요하게 고려하여 교육 단계에서 자살우려자 식별 여부와 신상등급 분류를 결정하였을 것이고, 실제 A를 자살우려자로 식별하거나 A급으로 분류하여 관리하였을 개연성이 크다"며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위와 같은 검사 결과를 알지 못한 상태로 실시한 면담에서 A에게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다른 자살 징후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와 같은 개연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나아가 "A가 자살우려자로 식별되거나 A급으로 분류되었다면 신상관리 · 처리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부대관리훈령 등 관련 규정에 마련된 절차에 따라 A에게 정신과 군의관의 진단 등을 받도록 하고 진단결과에 따라 입원 또는 외래치료를 실시하거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하며, 필요시 상급부대로 분리하여 상담과 관찰을 하거나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며 "설령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고도 다른 사정을 고려하여 A를 자살우려자로 식별하거나 A급으로 분류하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A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기에 외부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하거나 인성검사 결과를 반영한 면담 · 교육 · 관찰 · 지도 등의 방법으로 A에 대한 신상관리를 달리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 · 관리 · 처리의 책임이 있는 지휘관 등 관계자가 교육사에서의 인성검사 결과를 반영하여 A에 대하여 부대관리훈령 등 관련 규정에 따른 조치를 포함한 A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 사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결국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에서 자살예측의 결과가 나타난 이상 당시 A에게 자살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는데도 A에 대한 신상관리에 인성검사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은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 · 관리 · 처리의 책임이 있는 관계자가 인성검사 결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여 후속조치를 할 직무상 의무를 과실로 위반한 것이고,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 위반과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원심으로서는 자살예방법과 장병의 자살예방 대책 관련 규정을 상세히 살펴 인성검사에서 자살예측 결과가 나온 경우 자살우려자 식별과 신상파악 · 관리 · 처리의 책임이 있는 관계자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에 관한 직무상 의무를 확인하고, 교육사에서 실시된 인성검사 결과의 관리와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적절하지 않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경우 이 사건 사고를 예방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등을 신중하게 살펴보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