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강간상황극 유도' 남성에 징역 13년…실제 성폭행한 남성은 무죄
[형사] '강간상황극 유도' 남성에 징역 13년…실제 성폭행한 남성은 무죄
  • 기사출고 2020.06.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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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법] "미필적 고의 인정 어려워"

채팅 앱을 통해 여성인 척하며 '강간상황극'을 유도한 남성에게 징역 13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 남성의 유도에 따라 실제로 여성을 강간한 남성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A씨는 2019년 8월 5일 오후 10시 5분쯤 세종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여 '35세 여성'이라고 속이고 "만나서 상황극 같이 하실 분 가까운 분만 이상한 질문들 하지 말자 올껀지 말껀지 그거만 대답해 먼 남자 XX들이 재는 게 많어"라는 글을 게시하고, 이 글을 보고 연락해 온 B씨에게 "강간 플레이를 하자. 문을 두드리고 옆집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면 문을 열어주겠다. 강간 플레이가 끝나면 애인처럼 대해주겠다"는 취지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집 맞은 편 빌라에 사는 C(여 · 당시 32세)씨의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A씨는 같은날 오후 11시쯤 C씨가 사는 빌라에 도착한 B씨에게 이 빌라 공동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어 B씨로 하여금 C씨의 집 앞까지 올라가게 하였다. A씨는 이어 C씨 집의 현관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돌아가려고 하는 B씨에게 "남자가 왜 그렇게 배짱이 없냐. 화장실에 있었다. 문을 열어주고 다리 벌려주고 그러면 이게 어떻게 상황극이냐. 검은 모자를 쓴 남자냐. 올라가서 시작하세요"라는 취지로 메시지를 보내 B씨로 하여금 강간상황극을 하는 것으로 믿게 하여 재차 C씨의 집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B씨는 C씨 집의 현관문을 다시 두드린 후 A씨와 약속한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인이 찾아온 줄 알고 우연히 문을 열어준 C씨의 목을 잡고 방으로 밀고 들어가 C씨를 성폭행했다.

B씨는 C씨와 성관계를 하던 중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와 얼굴을 내미는 A씨의 모습을 보고 놀라 옷을 입다가 휴대전화를 들고 112 신고를 하려는 C씨를 보고 C씨의 휴대전화를 낚아채 빼앗은 후 도망간 뒤 이 휴대전화를 강가에 버렸다.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용찬 부장판사)는 6월 4일 A씨에게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강간 교사 혐의를 적용, 징역 13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이수 10년, 정보통신망 공개 · 고지 5년, 아동 · 청소년 관련기관 등 및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 10년을 선고했다(2020고합50). 그러나 B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에 대한 무죄 선고와 관련, "피고인 B가 피고인 A와 강간상황극을 하자는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피고인 A가 여성인 피해자 행세를 하며 강간상황극을 하자고 한 것임을, 즉 강간상황극이 아닌 강간일 수 있음을 알고도 이를 용인한 채 피해자를 강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피고인(B)은 피고인 A에게 속아서 합의에 의한 강간상황극을 하는 것으로 알고 강간범의 역할을 하며 피해자와 성관계를 한 것으로 보일뿐이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고인 A와 강간상황극을 하자는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실제로는 피고인 A가 제의한 강간상황극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강간일 수 있음을 알았다거나 그럼에도 이를 용인하여 피해자를 강간하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양형과 관련, "피고인 A는 자신의 집 주변의 빌라에 살던 피해자 C의 집 주소, 빌라 공동현관문의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이를 이용하여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강간상황극을 하자고 피고인 B를 속임으로써 그로 하여금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하여 강간하게 하는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하고, "피고인은 당시 주변에서 피고인 B를 지켜보면서 피고인 B가 강간상황극으로 믿고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하여 피해자를 강간하도록 수차례 적극적으로 교사하였고, 피고인이 직접 피고인 B가 피해자를 강간하는 현장을 보기 위하여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 문을 열어 고개를 내미는 대담성까지 보였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A씨는 2019년 8월 이웃에 사는 또 다른 여성에게 26차례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킴과 동시에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보낸 혐의 등도 유죄로 인정되어 함께 양형이 이루어졌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