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일단 뛰기 시작한 심장은 그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다"
[형사] "일단 뛰기 시작한 심장은 그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다"
  • 기사출고 2020.06.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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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자식 살해후 자살 시도한 엄마 2명에 징역 4년 실형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할 순 있지만, 일단 뛰기 시작한 심장은 그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박주영 부장판사)

어린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아이들의 생명만 앗아간 여성 2명에게 각각 징역 4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A(여 · 40)씨는 2019년 8월 12일 오전 11시쯤 울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다량의 정신과 약을 9살 딸에게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을 앓고 있는 딸을 키워온 A씨는 사회적 연령이 약 2세 5개월에 불과하여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딸에 대한 양육 부담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2017년 11월경부터 우울증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2019년 1월경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남편 또한 우울증, 공황장애로 휴직과 입원치료를 반복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자, A씨는 자신이 죽게 되면 남겨진 딸을 돌볼 사람이 없고 남편에게도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결심했다. A씨는 딸이 복용하던 처방약을 한꺼번에 먹이고, 자신도 약을 먹었다. 딸은 사망했으나, A씨는 정신을 잃었다가 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울산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는 5월 29일 A씨에게 살인 혐의를 인정, 징역 4년을 선고했다(2019고합365).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한 B(여 · 42)씨는 2016년경 현재 남편과 재혼하여 2016년 12월 아들을 낳았으나,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외도까지 하자 심한 가정불화를 겪게 되어 우울증이 심해졌다. B씨는 2018년 12월 16일 오후 10시쯤부터 다음날 오전 4시 50분쯤 사이에 남편과 아이 문제로 심하게 다투게 되자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고 방에 번개탄을 피워 두 살 된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목숨을 건졌다.

같은 재판부는 이날 B씨에게도 징역 4년을 선고했다(2019고합142).

재판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우리 사회에서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자주 되풀이되는 공통되는 원인으로,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그릇된 생각과 그에 기인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꼽히고 있으나, 이러한 범죄는 동반자살이란 명목으로 미화되거나 윤색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고, "이 범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것이고, 살해 후 자살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동반자살이라는 워딩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가해 부모의 범행을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발생 원인을 가해 부모의 게으름, 무능력, 나약함 등에서 비롯된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해버리는 시각 역시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범죄임을 선언하고 단죄함과 동시에, 당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우리가 맡아 키우겠다고, 최소한 당신이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자신 있게 공표하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 두 사건의 재판장을 맡은 박주영 부장판사는 2019년 7월 판결문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당사자들의 아픔과 판사의 번민을 담은 에세이집 《어떤 양형 이유》를 펴내기도 했다.

한 달에 2명꼴로 발생

이 재판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미수를 포함해 최소 279명의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의 죽음에 동반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달 두 명 꼴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191건 중 생활고 및 빈곤, 채무, 사업실패 등 경제적 영역의 문제가 가해자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확인된 사건이 97건(50.7%)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일반 자살자의 동기로 정신적 · 정신과적 문제(31.7%)가 가장 컸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