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23년간 姓 다른 2개 주민번호…하나로 합쳐야"
[행정] "23년간 姓 다른 2개 주민번호…하나로 합쳐야"
  • 기사출고 2020.06.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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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불이익 신청인 부담 곤란"

행정기관의 잘못으로 23년간 2개의 주민등록번호와 성(姓)을 갖고 살아온 20대 여성이 행정소송 끝에 본인이 원하는 성에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된 주민등록증을 받게 되었다.

1993년 태어난 하 모씨는 당시 부모님이 관할행정청에 출생신고를 하였으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6자리만 부여되었고, 뒷자리 7자리는 부여되지 않았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하씨의 어머니가 이혼 후 재혼하면서 1997년 하씨에 대해 새아버지의 성인 유 모씨로 다시 출생신고를 했다. 이 과정에서 두 번째 주민등록번호 13자리가 나왔으나 이번에는 이미 어머니 호적에 첫 번째 성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관할 법원에서 출생신고를 반려, '유○○'에 대한 호적부가 작성되지 않았고, 제적등본 및 가족관계등록부에도 '유○○'은 최○○ 또는 유○○의 자녀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결국 하씨는 6자리만 있는 첫 번째 주민등록번호, 출생신고나 가족관계 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은 두 번째 주민등록번호와 두 개의 성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고, 두 번째 주민등록번호와 성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하씨는 온전한 신분을 찾기 위해 관할 구청에 유씨의 주민등록증을 반환받고, 첫 번째 주민등록번호에 뒷자리를 부여하여 이 주민등록번호가 찍힌 주민등록증을 교부하라고 신청하였으나 거부되자 구청을 상대로 소송(2019구합82028)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이상훈 부장판사)는 그러나 5월 28일 "주민등록번호 부여 거부처분 및 주민등록증 교부 거부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관련 법령에 의하면 1차 출생신고로 '하○○'에 대하여 호적법 및 구 주민등록법에 의한 신고가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고, '하○○'에 대하여 출생연월일을 기초로 하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부여된 사정에 비추어 달리 행정청이 '하○○'을 주민으로 등록하는 것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구 주민등록법의 입법 목적에 배치되는 등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만한 정황도 없다"고 지적하고, "주민등록법은 주민등록제도에 편입되는 대상자, 즉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구역 안에 주소 또는 거소를 가진 자'인 주민에게는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주민등록이 이루어지는 주민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는 데에 재량을 부여하고 있지 않으므로 피고는 '하○○'에 대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또 "원고가 '유○○'으로서 학교를 다니는 등 법률관계를 형성한 사실은 있으나, 유○○은 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이 없고, 관할 법원이 출생신고 서류를 반려하였으므로 '법원 기타 관공서 또는 검사 기타 공무원이 그 직무상 호적의 기재에 착오 또는 유류 있음을 안 때에는 지체없이 신고사건의 본인의 본적지의 시, 읍, 면의 장에게 이를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구 호적법 제22조 제3항 및 구 주민등록법 제13조의3의 내용에 비추어,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민등록 사항이 정정 또는 말소될 것이 예정되었던 사안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유○○'의 주민등록에 대해 호적법과 구 주민등록법이 예정하는 처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비록 이후 원고가 '유○○'의 주민등록을 바탕으로 법률관계를 형성하였다고 하더라도 주민등록제도를 관할하는 행정청과의 관계에서 그러한 상황의 불이익을 원고가 부담하여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출생신고와 그에 따른 주민등록번호 부여는 생물학적, 법률적 부녀관계를 창설하지 않고, 이 사건 신청이 수리된다면, '하○○'에 대한 주민등록이 완성되어 하○○에 대한 주민등록번호 및 주민등록증이 교부될 뿐이고 가족관계등록부에 변경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하고, "원고가 '하○○'과 동일인이라는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되는 이상 원고에 대하여도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행정사무의 대상으로 편입시킬 필요성을 위한 동일성은 증명되었다고 보이며, 원고가 각종 공법상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제도의 대상으로 편입시킬 필요 또한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를 '하○○'로 인정하기 충분하고, 피고는 '하○○'에 대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주민등록증을 교부할 의무가 있어 원고의 신청을 수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